마지막 오찬_201회
D-8, 마지막 오찬이라는 이름의 인사
2025.12.23. 화 (D-8)
정년퇴직을 여덟 날 남겨두고 본부장님과 오찬을 했다. 기조실장까지 셋이서였다. 사무실에서 함께 움직이면 괜히 인사를 나누게 될 것 같아, 송정역 인근 식당에서 바로 만나기로 했다. 이미 마음이 충분히 분주한 날이었다.
비와 눈이 섞여 내렸다. 유난히 축축한 공기 속에서, 요즘의 내 마음이 이런 날씨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을 향해 가고는 있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
내가 먼저 도착했고, 곧 본부장님과 기조실장이 함께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말보다 먼저 눈빛에서 ‘오늘의 자리’가 무엇인지 서로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공로연수를 배려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사이 목표로 삼았던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본부장님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고생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 말 하나로 충분했다.
본부장님이 맛있는 걸로 시키라며 권해 대왕조개전골에 낙지를 추가했다. 냄비에서 김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박물관에서의 시간들을 천천히 꺼내 놓았다. 바쁘게 지나간 날들,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순간들. 이제 와서는 사소한 이야기조차 소중하게 느껴졌다.
대화 중에 남실장이 이제는 힘든 기조실 업무를 내려놓고 감사실 업무만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일처럼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여러 업무를 겸하며 버거워 보였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누군가에게는 이동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짐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오늘 이 자리는 나만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각자의 시간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는 것을.
식당에 들어올 때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괜히 이 자리가 부담스러웠고, 마주 앉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설 때는 달랐다. 마음 어딘가에 묶여 있던 것이 하나 풀린 느낌이었다. 마지막 오찬을 하고 나서야, 퇴직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헤어지며 기조실장이 다음 주에 사무실에서 다시 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면서 알았다. 그 ‘다음’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것을. 짧은 인사였지만, 오래 함께한 시간에 대한 조용한 정리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같은 날씨였지만, 마음의 무게는 분명 가벼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