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지 못한 나무는 다음에도 모른다

겨울숲바라보기 남한산성_202회

by 광풍제월

알아보지 못한 나무는 다음에도 모른다

(겨울숲바라보기 남한산성)
2025.12.27. 토 (D-4)

춥다는 예보에 상·하 내의를 챙겨 입고 털모자를 눌러썼다. 양말은 두 켤레를 신었다. 겨울숲바라보기 남한산성 답사가 있는 날이었다. 알자반, 놀자반, 날자반 회원 모두가 함께하는 날이라 마음이 조금 들떴다.

남한산성은 이번이 네 번째 답사다. 길은 이제 제법 익숙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낯설다. 지하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 보였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9-1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바닥에 쌓인 참나무 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처럼 포근해 보였다. 겨울숲은 이렇게 발밑부터 다정하다.

협회 상임대표의 격려 인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감기가 심해 참석하지 못했다. 준비운동을 마친 뒤 조별로 답사에 들어갔다. 나는 서성규 강사가 맡은 1조에 배정됐다. 지난번과 달리 각 조마다 한두 명씩 불참자가 있었다. 숫자는 줄었지만, 집중하기에는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다.

답사에 앞서 강사는 오늘의 나무 공부 방향을 분명히 했다.
“나무 공부는 쉽게 말해 나무의 신상 털기입니다.”

핵심은 세 가지였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볼 것. 내 주변의 나무부터 알아갈 것. 그리고 겨울눈은 반드시 ‘이미지’로 기억할 것. 어디서 본 적 있는 눈이라는 감각이 바로 떠오를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웃집 사람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이웃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동네에서든 낯선 곳에서든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나무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름을 외우는 데만 급급했고, 얼굴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눈을 보고 나무를 알아가는 과정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옆사람의 속도를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끝까지 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식별하지 못한 나무는 다음에 만나도 여전히 모른다. 겨울눈을 사진 찍듯 눈에 담으라는 말이 유독 오래 남았다.

“소지에 나무의 본성이 있습니다.”
겨울눈이 포함된 소지 일부만 보아도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색깔과 구조, 배치를 루페로 들여다보며 눈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보라고 했다. 몇 개라도 정확히 이미지로 기억하면 어느 순간부터 급속도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 지점까지 가는 수고를 피하지 말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이날 거의 60개 수종을 보았지만,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열 종 남짓이었다. 네 번째 답사임에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겨울눈은 또렷하게 남았다.

병꽃나무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삼각형을 만드는 사람처럼, 겨울눈이 마주나기로 가지에 바짝 붙어 있었다.
풍게나무는 거치가 밑까지 이어지고 짝궁뎅이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자유생장이라 끝이 마르고, 겨울눈 역시 가지에 밀착해 있었다.
황벽나무의 겨울눈은 코주부 모양이었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이었다. 코르크가 발달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뽕나무는 엽흔이 겨울눈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선명했다. 이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으면, 다음에 어떤 뽕나무를 만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에 가면 나무를 ‘등록 관리’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름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나무가 손에 꼽히는데, 등록 관리라니. 그래도 이제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국 아는 만큼만 보이고, 기억한 만큼만 다시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간식을 먹은 뒤에는 10고개 게임을 했다. 한 사람이 떠올린 나무를 설명하면, 나머지가 이름을 맞히는 방식이다. 모두 1단계에서 정답이 나왔다. 관찰한 수종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만큼, 본 것은 머리에 남아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겨울눈을 바라보는 접근법은 분명해졌다. 옆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이미지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 아직은 멀지만, 가야 할 길의 윤곽은 보이기 시작했다.

답사를 마치며, 추위 속에서도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간 강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겨울숲은 오늘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오래 보라고, 천천히 기억하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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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병꽃나무 겨울눈, (우)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 1조 거울눈 동정, 남한산성, 촬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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