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봉산에서, 겨울숲을 다시 보는 법

예봉산_200회

by 광풍제월

예봉산에서, 겨울숲을 다시 보는 법

2025.12.20. 토 (D-11)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 첫날이었다.

8시 20분,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비옷을 챙겨 집을 나섰다. 비 예보가 있었다. 준비물보다 마음가짐이 더 분주한 아침이었다.


팔당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지하철이 연착되었고, 강사 한 분은 운길산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첫날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외곽으로 가는 지하철에 조금 더 여유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머리에서 몸풀기 운동을 했다. 교육생 16명, 강사 2명. 모두 자리에 모였다. 한 사람씩 구령을 맡아 운동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단순한 준비운동이었지만, 앞으로 함께 걸을 사람들의 호흡을 미리 맞추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조는 둘로 나뉘었다. 나는 1조였다. 손종례 강사는 수업을 시작하며 짧은 자기소개를 제안했다. 왜 이 날자반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날자반의 분위기가 좋아서 왔다고 말했다. 더 복잡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날은 그 말이면 충분했다.


비가 조금씩 내려 우의를 입고 숲으로 들어갔다. 강사의 첫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루페로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방식은 지양합니다.”

대신 전체 수형, 가지의 방향, 겨울눈의 위치, 그리고 우리가 오르는 남사면의 조건을 함께 보자고 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때 묻고, 그때 배우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보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전날 송년회 여파로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설명을 듣는 것조차 버거워, 발을 헛디딜까 봐 걸음마다 조심했다. 그 덕분인지 오히려 천천히, 멀리 보게 되었다.


처음 집중해서 본 나무는 굴참나무였다. 이 산에서 가장 자주 마주칠 나무라며, 다른 참나무와 비교하려 하지 말고 굴참나무 자체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깊게 갈라진 수피, 코르크질이 발달한 껍질, 가지에 달린 둥근혹벌. ‘구별’이 아니라 ‘익숙해지기’가 목표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생강나무 앞에서는 꽃눈과 잎눈의 위치 이야기가 나왔다. 잎눈은 위쪽에, 꽃눈은 아래쪽이나 겨드랑이에 만들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그 위치를 의식해 보았다. 강사는 말했다.

질소가 많은 조건에서는 성장을, 탄소가 많은 상태에서는 열매를 선택한다고. 꽃눈에는 탄소가 많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나무를 보며 자원 배분을 떠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신갈나무에서는 잎이 떨어지지 않은 채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세션스. 고사했지만 탈락되지 않은 상태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린 가지를 보호하거나 봄에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새순을 보호한다는 가설들이 있다고 했다. 모른다는 사실까지 함께 배우는 시간이었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정상에 올라가도 전망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 끝에, 우리는 정상행을 접고 되돌아가기로 했다. 간단히 간식을 나누었다. 나는 총무가 준 막걸리를 꺼냈다가, 식당에서 마시자는 말에 다시 넣었다. 대신 빼빼로를 꺼냈고, 다른 교육생들이 가져온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 짧은 쉼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하산길에서는 올라올 때 보았던 나무들을 다시 보았다. 같은 나무였지만, 겨울눈과 수형이 조금은 눈에 들어왔다. 배봉산에서 익숙했던 팥배나무도, 유목의 모습으로 보니 전혀 다른 나무처럼 느껴졌다. 수피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선명한 팥배나무 앞에서는 모두가 잠시 멈춰 섰다.


3시에 하산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순두부와 청국장, 미나리무침전, 그리고 막걸리. 거울숲바라보기 날자반의 첫날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속에서 잔을 들었다.

이날 나는 많은 나무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대신 겨울숲을 보는 방식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얻었다.

첫날은 그렇게 발걸음을 뗐다.

1766282475483.jpg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 예봉산 답사,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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