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_11회
행군의 어려움
1987. 3. 26. 목요일. 맑음
속초의 바람이 강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날이다. 오늘 실거리 사격을 위하여 연대 사격장까지 가는데 행군을 하며 갔다. 행군이란 말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행군 시 바다 바람이 몹시 차갑게 느껴져 왔다.
속초의 바람이 4월 말까지 분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앞사람과의 간격이 떨어지니까 따라잡기가 참 힘이 들었다. 행군의 속도가 생각보다는 참 빠른 것 같았다. 보병의 무기는 바로 행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점점 걷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다리에 통증이 왔다. 발이 부르트고 발바닥이 아파왔다. 하지만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이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더 힘든 체력단련도 견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격장까지 가는 도중에 도로의 사정과 산세를 볼 수 있었는데 바다와 산을 낀 속초는 참 아름다웠다. 특히 먼 산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아득한 향수와 정복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실거리 사격을 하기 전 정신 훈련이 있었다. 사격은 올바른 정신상태가 아니면 오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막상 입사호 사격을 하게 되니 그동안 배웠던 사격술 예비훈련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표적을 향해 쏘았지만 잘 맞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먼 길을 행군했다는 안도감과 하루가 무사히 지났다는 흐뭇한 감정이 진하게 다가왔다. 이제 지난 일은 잊고 다시 사격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여야겠다.
먼 길에 쌓인 피로 탓인지 감기 몸살이 심한 것 같다. 의무대에 갔었는데 위생병들이 참 친절했고 민주군대 현대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