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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작시

크리스마스 카드

자작시_크리스마스 카드

by 광풍제월

크리스마스 카드

1988.12.24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신비의 힘을 지닌 하얀 사각봉투

백합보다 더욱 흰 너의 겉옷은 보는 이의

마음에 무지갯빛 영상을 일으킨다.


순결한 너의 옷을 벗으면

또박또박 쓰인 활자는 살아 움직여서

읽는 이의 머릿속에 물방울의 영상을 일으킨다.


빨강은 정열

파랑은 희망

회색은 낭만

핑크빛은 사랑을

전해주는 너는 무한한 요술쟁이


80원짜리 꼬리표만 달면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시골의 오두막집 어디에나 갈 수 있는 너는

신비한 힘을 지녔구나


다정한 연인의 사랑의 이음줄이 되어주고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주고

병마에 씨름하는 이에게 위안을 주고

멀어져 간 여인의 옷자락의 향기를 전해주는

너는 판도라의 상자.


흰 눈송이가 교회종탑에 사뿐히 내려앉을 때

생명을 얻고 생명수의 향기를 뿜어주며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세월을 앗아가는

너는 신비한 힘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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