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니체에 푹 빠져있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철학과 재학 시절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니체는 내 마음을 동하게 했다. 평소 멀리 했던 도서관으로 니체는 나를 인도했다. 당시 교수님께서 ‘시대를 반 발자국 앞서가면 추앙을 받지만 두세 발자국을 앞서가면 버림을 받는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니체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다.
약 20년 만에 나를 다시 니체의 세계로 인도한 책은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이다. <니체의 삶>은 니체의 전기로 인간 니체와 니체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거의 완벽하게 그려 놓고 있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문학상인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받은 캐스턴 휴즈는 <니체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전기는 단순히 진실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 니체가 있다. 이전에 우리 대부분은 진짜 니체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프리도의 명철한 전기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니체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니체의 삶>에 대한 평가는 화려하다. 먼저 영국에서 매우 권위 있는 호손덴상 100주년 수상작에 선정됐다. 호손덴상은 지난 1년간 영국에서 41세 이하 작가가 출간한 모든 시, 소설, 에세이를 포함한 작품 중에서 선정된다. 2019년은 호손덴상의 100주년이라 더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니체의 삶>의 저자 수 프리도는 내는 작품마다 상을 타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3권이 책을 냈는데 2005년에 출간한 <에드바르 뭉크>는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2012년에 출간한 <스트린드베리의 삶>은 더프 쿠퍼상과 사무엘 존슨 상 최종 후보에, 2019년에 출간한 <니체의 삶>은 호손덴상을 받았다. <니체의 삶>은 타임스가 뽑은 올해의 전기, 뉴욕타임즈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책에도 선정되었다.
<니체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크게 2가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인간 니체의 처절했던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이 형성된 삶의 맥락과 <비극의 탄생>을 시작하여 니체의 마지막 작품인 <이 사람을 보라>까지 이어지는 니체의 철학의 요체를 배울 수 있다.
내가 대학시절 느꼈던 것이기도 했지만 어떤 철학자의 사상은 그 철학자의 삶에 대해 잘 몰라도 이해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지만 어떤 철학자의 사상은 철저히 철학자의 삶과 결부되어 있어서 철학자의 생을 알 수 없으면 사상 핵심을 이해하기 힘들다. 니체가 후자에 가깝다. 니체의 철학은 ‘생의 철학’으로서 니체 삶 그 자체를 대변한다. <니체의 삶>을 읽으며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니체의 사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인간 니체를 제대로 알 때 가능하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부를 끝내기 2주 전에 유대인 동물학자 율리우스 파네트가 니체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파네트는 니체의 책을 읽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니체가 예언자나 현인, 연설가 같은 모습일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니체가 아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람이어서 루처럼 속으로 깜짝 놀랐다. 니체에게 예언자 같은 모습은 없었다. 6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니체는 자연스럽고 말수가 적었으며 악의가 없었고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았다. 진지하고 위엄 있는 태도였지만, 유머 감각도 있고 유머에 반응할 줄도 알았다.” - <니체의 삶>
아마 니체를 그의 책으로만 만났던 독자들이 <니체의 삶>을 읽는다면 대부분 파네트 같은 반응을 할 가능성이 크다. 니체의 문체는 단호한 것을 넘어 과격하고 예언자적인 분위기를 많이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의 삶>을 통해 내가 바라본 인간 니체는 마음이 생각보다 여리고 ‘과격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심지어 파네트가 느꼈던 것과 다르게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았다.
니체는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평생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두통, 복통, 시력 상실 등에 시달렸다. 정신 이상으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정신이상에 시달리다가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는 니체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생의 끝까지 쫓아다닌다. 마음이 여려 주변 사람들에게 부응하려고 했던 니체는 자신의 본심과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책이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냉랭한 세상 반응에 평생 괴로워했다. 철저하게 무시당한 그의 음악 작품도 그 고통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니체의 어렸을 적 꿈은 음악가였다.
니체는 정신 이상이 걸리기 직전에 세상에 각광을 받기 시작했으며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의 사상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성자’로 불릴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두렵다. 나는 성자가 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광대이고 싶다.”
슬프게도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 의해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들에게 ‘광대가 된 성자’가 되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관장하던 니체의 문서 보관소는 나치들의 모임 장소로 변했다. 엘리자베스는 무솔리니 그리고 히틀러와 어울렸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니체의 첫 책의 제목이 <비극의 탄생>이다.
<니체의 삶>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새롭게 안 놀라운 사실은 니체의 문체 변경 이유이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부터는 그 전의 작품인 <비극의 탄생>과 <반시대적 고찰>과는 다른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잠언체로 바뀐 것이다. 니체의 이런 글쓰기는 니체를 독창적인 문장가이자 진정한 예언적 사상가로 발돋움하게 했다. 그렇다면 니체는 왜 잠언체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일까? <우상과 황혼>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포리즘에 숙달한 최초의 독일인이다. 아포리즘은 영원성이 부여되는 형태이다. 나의 야심은 다름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 말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열 마디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의 삶>을 읽어보면 잠언체의 탄생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니체는 너무 아팠다. 하루에 정신이 개운한 시간이 1~2시간밖에 되지 않는 날이 너무 많았고 눈은 점점 더 흐려졌다. 다시 말해 니체는 긴 호흡으로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니체는 어쩔 수 없이 문체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니체의 ‘위버멘시(초인)’는 고통과 허무가 지배하는 순간조차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고통과 허무가 삶을 집어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숙한 방어기제’이다. 나에게 <우상과 황혼>에서 드러난 니체의 허세는 그의 ‘성숙한 방어기제’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니체는 자신의 삶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니체의 삶>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로 이어지는 니체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날 것의 배경과 니체의 심리 상태 그리고 작품 속에 담긴 사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룬다.
<니체의 삶>을 통해서 처음 안 사실이지만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기존의 사상의 근간을 흔드는 대작을 쓰려고 했다. 니체의 여동생이 니체의 유고를 임의로 편집한 <힘에의 의지>와는 완전 다른 책이다. <힘에의 의지>는 반그리스도, 자유정신, 부도덕자, 디오니소스 이렇게 4장으로 구성될 계획이었는데 반그리스도를 쓰고 나서 니체는 계획을 변경해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를 쓰고 미치게 된다. <힘에의 의지>가 나왔던 과연 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신의 죽음’이라는 시대 사상을 선언했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철학자 니체. <니체의 삶>의 원제는 <I am dynamite>이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예언했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내 이름은 어떤 놀라운 회상과 관련될 것이다. 지상에 한 번도 없었던 위기, 가장 깊은 양심과의 충돌, 이제까지 믿고 요구되고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반하는 결정에 관한 회상과 접목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I am dynamite).”
진짜 니체의 삶과 철학을 알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니체의 삶>을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