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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Jul 09. 2020

역사책을 쉽고 깊게 읽는 3가지 방법

각자마다 독서 취향이 있다. 나는 소설보다는 논픽션을 좋아한다. 논픽션 중에서는 특별하게 가리는 분야는 없다. 경제, 경영, 인문, 사회, 심리, 과학 등 두루 읽는 편이다. 하지만 논픽션 중에서 정 붙이기가 매우 힘든 분야가 있었다. 바로 역사이다. 왜 그랬을까? 방대한 사실적 지식에 따른 소화불량? 


역사를 읽을 때는 시대, 장소, 인물, 문화, 정황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역사적 배경 지식이 부족할 때는 책을 읽는 도중에 계속되는 역사적 사실들에 매몰되어 독서는 어느새 고행이 되기 일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 역사를 접할 때는 역사적 디테일이 강한 책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주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혹은 특정 짧은 시대를 다각도로 보여주는 책보다는 특정 관점으로 좀 더 긴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 경험상 역사 초보에게 좋다.



예를 들어 같은 이유로 위 사진에 있는 책들은 모두 추천할만한 역사 벽돌책들이지만 역사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던 분은 아래쪽보다 위쪽 라인의 책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특정 관점, 긴 호흡으로 상대적으로 역사적 사실들에 치이지 않고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리뷰할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가 후자에 속한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는 5만 년 인류 역사라는 큰 그림을 크게 3가지 관점으로 멋지게 그려주고 있다. 쉽고 깊다고 해야 할까?



1. 서사(내러티브)


서사란 무엇일까?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서의 서사는 ‘잘 짜인 이야기 형식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틀’이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 세계관은 이야기 구조로 만들어졌을 때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토리 애니멀이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은 지식, 가치, 도덕, 규칙 등을 대부분 이야기를 통해 배운다. 인간은 같은 분량의 개념, 지식보다 이야기를 더 잘 외운다. 아니 모든 인간은 이야기에 중독된 채로 살아간다.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 없이 살 수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정치, 연예,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그 속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인물이어도 스토리가 부족하면 사랑받기 힘들다. 반면 탁월성이 조금 부족해도 스토리가 드라마틱하면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최고의 실력과 최고의 스토리가 만나면? 마이클 조던을 보라. 어떠한 결과가 펼쳐졌는지.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등장한다. 정말 나는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 평가는 끝났다고 본다.


역사는 사실을 다루지만, 그 사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사에 복무한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 9 -


결국 역사를 써 내려가는 주체는 ‘서사’이며 역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당시 그 지역에 지배하고 있던 서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서사에 대한 이해는 너무 중요하다. 역사는 당시의 현재였고 현재는 당시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서사는 결국 현재와 미래 또한 만든다. 그래서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을 강력 추천했던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다음과 같은 추천평을 썼던 것이다.



역사도 그랬다면 현재와 미래의 운명도 ‘서사’에 달려있다. 우리는 어떤 서사 속에 있으며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서는 서사의 생성, 서사의 충돌과 소멸에 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 부분은 몽골 이후에 각 지역에 생성된 서사이다. 16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서유럽은 중국과 중동에 비해 진취적인 지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몽골 제국이 사라진 후 중국과 중동은 복원의 서사가, 서유럽은 진보의 서사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복원의 서사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기존의 사회적 구조를 보전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혁, 혁신, 신기술은 위험하다. 기존 사회적 구조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의 서사는 다르다. 개혁, 혁신, 신기술의 등장이야말로 서사에 제대로 복무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라면 다른 세계의 것이라도 관계없다. 도입하고 계량한다. 처음에 같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서사의 지배가 오래가자 역사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19세기 영국과 청이 충돌되었을 때를 보라. 아편 전쟁? 전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가.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 역사는 서사에 복무한다.


2. 맥락



맥락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인류 역사에 손꼽히는 발명품은 바퀴이다. 바퀴로 인해 인류는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고 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바퀴의 사용 실적이 미비했다. 발명은 되었지만 한동안 장난감 수준 이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의 인적 잠재력이 떨어져서일까? 그렇지 않다.


바퀴는 힘센 짐승이 무거운 짐을 들 수레에 끼울 수 있게 되었을 때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무거운 짐을 끌 짐승이 없었다. 말도 소도 당나귀도 심지어 낙타도 없었다. 아 낙타과에 속하는 라마가 있긴 했다. 하지만 라마를 보라. 무거운 뭔가를 끌기에는 좀...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육교 역할을 했던 빙하가 녹은 후 두 세계는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의 진보는 지리적 상황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맥락상 아메리카 대륙에서 바퀴의 혁신적 변신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3. 연결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불교의 불상은 어떤 문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아는가? 나도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을 읽고 알았다. ‘그리스 문화’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두 개의 요소가 알고 보니 ‘연결’되어 있었다.



12월 25일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성탄절, 산타클로스, 양말 속 선물, 트리... 이는 그리스로마 문화, 기독교 문화, 바이킹 문화 등이 뒤섞인 결과이다. 청나라의 정책과 미국의 탄생 간의 관계는 또 어떤까? 



이렇듯 연결은 역사를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연결이 역사에 영향을 미친 가장 극단적 사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다른 대륙과 단절되어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은 연결 후 당시인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균으로 인해 원주민들의 대멸종에 가까운 참사를 겪게 되었고 유럽에서 넘어온 기독교 서사가 오늘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모든 일반 독자에게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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