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니 머리가 굳는 것 같아.”
40대인 내 친구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물론 나는 절대 하지 않으려는 말이긴 하지만. 40대가 되면 머리가 굳는다... 정말 맞는 말일까? 결론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머리가 굳는다라는 말이 지적인 능력의 저하를 뜻한다면 이는 틀린 말이다. 펜실베니아대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 등은 약 6000명의 지적 능력 변화를 40년이 넘게 연구했다. 지적 능력은 어휘력, 언어 기억력, 계산 능력, 공간 정향, 지각 속도, 귀납적 추리 6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어휘력, 언어 기억력, 공간 정향, 귀납적 추리 능력은 40대 이후에 최정점을 찍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년이 되면 전반적인 지적 능력은 오히려 더 향상된다.
하지만 높은 지적 능력이 높은 지적 유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MIT 므리강카 수르 교수는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경험과 지식으로 형성된 최적의(라고 여겨지는) 뇌 회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적 경직성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40대가 넘어가면 뇌가 유연하지 못하다. 즉 ‘꼰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40대부터 오는 진짜 위기는 지적 능력 저하가 아니라 지적 경직성 강화이다. 특히 그 경직성은 타 집단(종교, 정치, 성별, 직급 등)에 대한 평가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 위기는 단지 40대인 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40대는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의 조직/집단/모임에서 ‘리더’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경직된 사고를 극복하지 못한 40대 리더의 의사결정 실패는 곧 그 집단 더 나아가 사회의 실패를 의미한다.
나는 세라 로츠 캐버너의 <패거리 심리학>의 판권을 검토하면서 이 책은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친구 40대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패거리 심리학>은 ‘집단’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집단의 자아화' -> '집단의 타자화' -> '집단의 탈인간화'로 이어지는 과학적 논리는 이 책의 백미이다. 우리는 <패거리 심리학>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 인간의 집단주의적 속성
- 집단의 특성
- 집단 이기주의
- 집단 충돌
- 정치의 진영 논리
- 마녀 사냥
- 사이비 종교
- 가짜 뉴스와 음모론
- 소셜 미디어가 집단에 미치는 영향
- 못된 패거리 문화들
- 못된 패거리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등
정말 못된 패거리 문화의 근저에는 ‘집단의 탈인간화’가 있다. 나와 다른 집단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을 때 시대의 비극(중세 마녀 사냥, 나치의 만행, 르완다의 대학살 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패거리 심리학>에 나온 연구를 보면 ‘집단의 탈인간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는 집단의 ‘리더’임을 알 수 있다. 그 리더는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특정 무리의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일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그런 리더 들 대부분이 40대 이상이라는 것.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집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물론 ‘분열’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때 사회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열이 ‘집단의 탈인간화’의 기반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비극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작은 비극은 진행 중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집단의 탈인간화라는 것은 어떤 특정 범죄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일상화된 단어인 ‘-충’을 보자. ‘-충’은 타 집단을 ‘벌레’로 표현하는 행위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말은 존재를 규정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런 단어를 자주 쓰면 어느새 그 단어는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되고 그 생각과 사상은 그에 맞는 특정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진다.
벌레가 죽는다고 가슴이 미어지는 인간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지적 경직성은 높은 지적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40대가 <패거리 심리학> 같은 좋은 책들을 읽고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고 현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분열’된 사회는 오히려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 40대에게 <패거리 심리학>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