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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Jul 10. 2024

머릿속에 시한폭탄이 있는 거예요

그게 왜 제 머릿속에 있을까요

"저... 지금 여기 화면이 송이(가명)님 뇌 CT 사진인데요. 이게 뇌혈관입니다.

여기 혹처럼 튀어나온 부위 보이세요?"


 지금 뭐라고 하는 것일까. 저게 내 머리 속이라는 건가. 지금 내 얘기를 하는 건가.

병명을 말하며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다니. 드라마 그 자체 아닌가? 아, 난 지금 드라마를 보는 건가.

아닌데. 드라마 아닌데.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현실이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마치 화면 속에 있는 사람 같아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설명을 하셨다. '의사'라는 직종 특성상 확언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면서도 '너는 지금 상당히 ㅈ됐다'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셨다. 


"그.. 그게 왜 생긴 건가요?"


 mbti를 운운하는 것이 웃기지만, 나는 T라서 항상 '왜'가 먼저 떠오르는 편이다.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진 이유는 없습니다."


 아하, 이유가 없군. 그럼 내 탓은 아니라는 건가. 아니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건가.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탓할 것이 있다면 '원망'이라는 감정이 생겨날 듯했으나 탓할 것이 없다면 원망할 상대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정밀 검사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루 입원을 하셔야 해요. 언제 하시겠어요?"


"아..."



 아이는 어쩌지?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5살 난 딸아이였다. 나는 아이를 낳은 이후 단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다. 아직 엄마 없이 자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쩌나. 아니,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이게 대수인가. 난 우선순위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아, 너무 갑작스러우시죠? 그럼 집에 가서 가족분들과 이야기하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한참 동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자 의사 선생님이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그렇게 진료실 문을 나서고 홀린 듯이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와 병원을 등지고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뇌동맥류'

 살벌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머릿속에 시한폭탄', '3분의 1의 높은 사망률', '터지면 그냥 죽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죽거나 영구 장애. 아주 운이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등등


'2.5mm 이상이면 크기가 꽤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내 머릿속에 있는 건 5mm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렇게 의사 선생님이 ㅈ됐다는 느낌을 풍기셨구나. 뇌동맥류는 사실 증상이 없는 질병이다. 그래서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거다. 조용히 혼자서 머릿속에서 부풀다가 '펑' 터지면 3분의 1의 확률로 즉시 사망, 혹은 이동 중 사망하고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영구적인 장애가 남거나 아주 운이 좋으면 멀쩡히 살 수 있는 살벌한 놈인데, 나는 사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 뇌동맥류를 달고 운이 좋다고 말하다니. 터지기 전에 미리 발견했으니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이 나이에 있는 것도 드물긴 하지만.


 그날 두통의 원인은 모르겠고, 뇌동맥류와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두통 따위는 지금 사라졌고 뇌동맥류가 발견이 되었으니 의사 선생님은 그날의 두통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 듯했다. 나로서는 그 두통이 신의 도움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두통이 없었더라면 나는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하필 그날이 일요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작은 병원에 가서 두통약이나 받았을 터인데 하필 일요일이라 큰 병원에 왔고 CT를 찍게 되었기에 이 '시한폭탄'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 그 두통은 은인 같은 존재인데 말이지.


 아무튼, 5mm의 거대함을 느끼며 잠시 병원 앞에 서있던 나는 홀린 듯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 전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본능이 그보다 먼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하지만 마침 엄마는 전화를 받지 못하셨다. 


'일단 집으로 가자.'


 뭔가 물속에 잠겨있는 듯했다. 현실 감각을 잃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모든 것이 아득하다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몸은 집을 향했다. 현관문을 닫고 텅 빈 거실에 누웠다. 일단 집이야. 집에 도착했어. 안전한 나의 공간에 도착했어. 점점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현실이구나. 일단 세수를 하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세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가. 정신을 차리려면 세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거대한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렇게 마주한 내 얼굴에는 얼마 전 돈을 주고 붙인 인조 속눈썹이 붙어 있었다. 그 속눈썹을 발견하는 순간,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이딴 거나 붙이고 있고. 뭐가 중요한 줄도 모르고. 한심한 새끼.'


나는 이상하게도 죄 없는 나를 욕하며 속눈썹을 마구 집어 뜯다가 세면대를 잡고 울었다.


'무서워요, 엄마.'


무서웠다. 살면서 가장,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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