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처음 듣습니다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참으로 빤한 문장이지만, 그러했다. 정말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아. 아니다. 그 전날도 머리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아침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베개에서 머리를 뗀 순간,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아,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 병원 좀 다녀와도 돼? 머리가 너무 아파."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남편에게 심상치 않은 상황을 전했다. 남편은 당연히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왜냐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먼저 아프다던가, 약을 먹어야겠다던가, 병원을 가야겠다던가 하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워낙 무뎌서 그냥 참고 있는 편인데 그런 내가 병원을 가겠다고 하니 신랑도 그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일요일이라 일반 병원은 문을 열지 않아 조금 거리가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돈이 더 나오겠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잘못됐어.'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CT를 찍.. 자구요?"
신경과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들어간 진료실에는 좋은 인상의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그분은 나의 이야기와 진료 기록들을 살펴보더니 CT를 찍자고 하셨다. 사실 나는 이 병원, 바로 이 신경과에서 도망친 이력이 있다. 몇 년 전-아마도 원인은 산후우울증이라 짐작하고 있는데-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비밀번호를 두 번이나 잊어버린 적이 있다. 한참을 서있어도 생각이 나질 않아 신랑에게 연락해서 겨우 들어간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다. 무서웠다. 그때 이 병원 신경과를 왔었다. 그때 만났던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이 심하거나 뇌에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라며 일단 뇌의 문제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CT를 찍자고 하셨는데 얼마냐고 묻자 30만 원 정도라고 하셨고 나는, 그 돈이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돈을 낼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검사실로 가라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그저 병원을 도망치듯이 나왔다. 그리고 병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한참을 울고 눈물을 닦고 집에 갔다. 혼자 아이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아무 일도 아니래~."라고 말했다. 차마 돈이 없어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럼 나만 우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도 울 테니까.
그 기록 때문인듯했다. 이전에도 CT를 찍었었어야 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안 찍고 도망갔으니 이번에는 꼭 찍어야 된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았고 난 머리가 너무나 아팠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CT를 찍었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머리가 점점 나아지더니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멀쩡해졌다.
'어라? 뭐지. 괜히 찍었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나의 생활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고 두통은 전혀 흔적도 없었다.
'CT 검사 확인을 위해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가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래도 비싼 돈 주고 찍었는데 결과는 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뚤래뚤래. 아무 생각이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해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내가 들은 것은 의외의 문장이었다.
"혹시, 뇌동맥류라고 들어보셨어요?"
"... 아뇨? 잘 모르는데."
어라?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