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자국

<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by 깜지

검은색을 좋아한다. 어두운 조명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 때 교실 불을 다 꺼놓고 있는 것을 좋아했고 그때마다 선생님이 어둠의 자식이냐는 고전적인 핀잔을 받는 것까지 좋아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이 눈의 피로가 덜 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볼 때도 조명을 낮게 설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어플이든 간에 전부 다 다크모드로 설정을 해놓았다. 때문에 흰 화면을 보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화면 설정이라던지 어플 테마를 블랙으로 하더라도 휴대폰을 사용하다 보면 흰 배경이 있는 화면을 보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이긴 하다. 단지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 극히 드물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금이 가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대체 언제부터 깨져 있었던 것인지 인지조차 못할 정도로.


그럼에도 금이 가 있는 정도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워낙 화면을 어둡게 보다 보니 금 간 자국이 티가 나지 않아 전혀 거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진 액정을 고치지 않고 애써 무시한 채 휴대폰을 쭉 사용했었다. 불편함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가끔 나의 휴대폰을 볼 때마다 금 간 자국이 신경 쓰이지 않냐고 물었다. 처음엔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답했지만 질문의 빈도수가 늘어날수록 괜스레 흰 화면이 띄워질 때마다 보이는 흉측한 자국들이 어느 순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면을 평소보다 더 어둡게 만들었고 타인에게 나의 휴대폰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더욱 깊은 어둠으로 상처를 감추려 했었다.


휴대폰도 주인 따라간다고 상처를 숨기는 꼴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상처가 내게 영원히 남겨진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심지어 나 조차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도록 절대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나를 가뒀다. 하지만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은 결국 나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겉으론 밝은 사람이었지만 나의 속은 썩어가고 있었고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깊게 융화될수록 오히려 가끔 빛이 드리울 때 금 간 자국은 더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그렇다. 상처를 아무리 숨기려 노력해도 한 번 빛이 비치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어둠을 알아차리고 가까이 다가와준 사람, 새로운 사랑. 하얀 배경의 빛이었다.


상처를 숨긴다 해서 그 상처가 치료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불편하더라도 빛으로써 상처를 드리워내고 치료도 해야 한다. 물론 상처를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을지라도 새로운 액정으로 갈아 끼우듯 그 위에 새살이 잘 돋아나게 치료하는 것이다. 마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상처를 새로운 사랑으로써 대체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나의 상처를 마주해야만 했고 보여주어야만 했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든 시련이었지만 받아들여야 할 진실된 사랑의 이치였다.


하얀 배경의 화면이 아니었다면 깨진 자국이 있었다는 걸 아마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상처에 대해 조금 더 담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빛이 내 치부를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나의 상처를 치료할 수도 있는 것처럼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액정을 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그냥 휴대폰을 새 휴대폰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앨범 속 그녀의 사진을 일일이 지우는 것도 귀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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