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인스타그램엔 스토리 다시 보기라는 기능이 있다. 같은 날짜에 올렸던 몇 년 전 과거부터 작년까지의 스토리를 다시 회상할 수 있게끔 보여주는 기능이다.
SNS, 특히 인스타그램을 평소에 즐겨한다. 특히 가볍게 나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토리를 종종 올리곤 한다. 연애할 때 특히 폭풍 업로드를 한다. 커플 셀카라던지 근사한 데이트를 하거나 이쁜 장소를 가게 되면 어김없이 스토리를 올리곤 한다. 반대로 피드라고 불리는 게시물은 업로드하지 않는다. 게시물은 영구적으로 남지만 스토리는 한나절 정도 올라와 있다가 사라진다. 나는 아름답고 반짝이던 순간을 기록하기보단 순간의 기억으로만 남기고 싶었다. 그런 아련함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별 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떠나 간 그녀와의 1년 전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하며 올해 같은 날을 밟아갈 때마다 기억의 파편에 찔려 아파하고 있었다. 미련한 미련을 버려두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마치 작정하고 나를 괴롭힐 의도였는지 분명 흔적을 남길 리가 없는 스토리였는데 스토리 다시 보기가 활성화되었다.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스토리 다시 보기를 누르면 분명 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그녀의 얼굴이, 우리의 추억이,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마주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누를지 말지 망설일 틈도 없이 시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은 11월 11일이었다.
스토리 다시 보기는 작년부터 시작이 아닌 내가 같은 날짜에 처음 스토리를 올린 년도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2020년부터 2023년 간의 11월 11일 기록을 되감기 하듯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시작부터 그녀의 사진이나 그녀와 연관된 사진부터 나오진 않았다. 친구들과 가벼운 모임부터 회사에서 선물로 나눠준 빼빼로 사진까지 다양한 나의 추억이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2023년에 도달했다. 2023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라서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녀와 처음 사귀기로 한 이후 처음으로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하기 위해 근사하고 멋들어진 50층 높이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와인을 마신 그런 날이었다. 레스토랑에 가기 전부터 백화점 구경을 하며 놀러 다니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같이 셀카를 찍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찍은 커플 사진과 서울 야경 그리고 멋들어진 음식 사진들을 잔뜩 스토리에 담아 올렸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같이 올린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올린 스토리 중 딱 그녀와의 사진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스토리 보관함에 들어가 그날 올린 스토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거기에는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고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 그녀의 사진만 다시 보여주지 않은 걸까?
어쩌면 인스타그램도 알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이별을. 그리고 내게 배려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의 늪에서 헤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더군다나 나보다 더 기억력이 좋을 터인 프로그램도 그녀를 잊었는데 내가 잊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에 그만 웃음을 짓고 말았다.
때로는 잊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내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란 것을 잘 안다.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지만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운으로만 남기는 것이 낭만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도.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것도 떠나 보니 더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한 내게 이렇게 배려 넘치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 그런 하루였다. 앞으로도 다른 날짜에 스토리 다시 보기가 올라온다면 지금처럼 그녀의 사진이 보이지 않게 잘 가려줬으면 하길 빌었다. 역시 여운으로만 남길 수 있는 흔적이 남지 않는 스토리가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