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눈을 수술한 지 꼬박 1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안검하수 치료를 위해 성형시술을 했었는데 내 팔자에도 없던 성형이란 것을 처음 해보게 되었다(물론 의료 목적이지만 겸사겸사 눈매 교정 등 할 건 다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하길 잘했다고 만족도가 높았지만(졸린 눈을 벗어나 눈망울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원래부터 예외를 안 좋아했던 나는 안정을 깨고 전혀 계획에 없던 행동을 할 때에는 상당히 비관적일 때가 많았다. 때문에 처음 시술을 하기로 얘기가 나왔을 때 최대한 안 하는 쪽으로 버티고 있었다. 시력과 눈 건강은 물론 이마 주름까지 단점이 훨씬 많아 시술했을 때 이점이 더욱 많았음에도 그동안 큰 불편함 없이 30년을 살았기에 시술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용도 한 두 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급히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고 귀에 피가 날 정도로 그녀는 내게 졸랐고 결국 그녀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시술을 하기로 결정했다(아마 내 졸린 눈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 그녀는 상수와도 같은 내게 있어 변수이자 영원이란 벽을 깬 예외였다.
시술부터 회복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눈이 더 시려오고 아팠다. 물론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취했을 때 그 기분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는데 내시경처럼 완전 수면 마취가 아닌 반수면마취라 그런지 마치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환각에 가까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나만 이런 건지 남들도 이런 지는 잘 모르겠다). 그 환각 같은 꿈은 내가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차원으로 이동하는 꿈이었다. 그 경험이 너무 신비롭고 생생해서 기억에서 떠나질 않았으며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런 인고가 깃든 신비로운 시간이 지나 회복이 전부 되었을 때 한 커플 더 떠져 있는 나의 눈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마치 성경이나 신화 속에 나오는 눈먼 장님이 기적으로 인해 눈이 뜨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 덕분에 말 그대로 사랑에 눈을 뜨는 경험을 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뒷면에는 잔혹한 사실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바로 수술비용을 그녀가 절반 정도 내주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받아서는 안되었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마치 선물처럼 느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만큼 내가 더 그녀에게 잘해주고 좋은 것들을 해주면 될 것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선물 받은 이 눈은 일반적인 선물처럼 버리거나 지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뭐 당연한 거겠지만 낭만파의 사랑이 어찌 헤어질 상황까지 고려하며 고민할까? 마음가짐은 항상 영원히 함께인데. 그래서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세상을 모르고 살았던 장님이 이제 막 사랑에 눈이 떠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이별은 내 인생 최고의 집착 어린 이별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떠나 감정에 의한 이별이 아닌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현실 때문에 선택한 이별을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매달리고 찾아가고 연락하고를 반복하며 현실을 이겨내 보자고 설득했으나 끝내 실패했었다. 그녀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느 순간 사랑에 눈이 멀어 그녀의 불안한 상황과 주변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그로 인해 역으로 자업자득처럼 현실이 우릴 갈라놓았다. 그렇게 두 눈이 먼 내가 문제였음을 인정하여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녀를 하나씩 지워나가기로 결정했다.
하나둘씩 그녀를 지워나가던 중 두 눈이 너무나 아파왔다. 두 눈을 뽑지 않는 이상 선물 받은 두 눈은 완벽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를 잊는 것은 눈 위를 칼로 찢고 이어 붙였던 그 고통이 다시 내게 전해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제야 두 눈을 선물 받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녀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끝없는 고통이 내게 따라왔다.
내 눈에 내 몸에 박힌 그녀를 과연 완전히 도려낼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홀로 끊임없이 고민해 오며 고통과 싸워왔다. 내가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그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만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낭만이 아니었다. 회피일 뿐이었다. 낭만은 실패와 고통이니까.
평생 고통을 안고 살지 아니면 고통을 이겨내고 두 눈을 뽑아 그녀를 도려낼지 선택할 시간이다. 고통을 떠안고 이루지 못할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고통을 이겨내고 나아가는 것도 모두 낭만이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상실의 슬픔 앞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내가 택한 낭만이었고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진정한 낭만을 사랑한다면 나의 결정에 대해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순수하지 않은 실패한 사랑이었다고 그 누구라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집착으로 인해 사랑에 눈이 멀었던 그리고 집착으로 인해 고통스러워도 그녀를 두 눈 안에 가두려고만 했던 내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아마 그녀를 도려내게 되면 당분간 눈을 뽑은 고통에 몸부리 치며 아파할 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지고 다시 두 눈이 먼 장님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 나의 눈을 뜨게 할 기적이 나타난다면 그건 새로운 사랑이겠지.
그 해 겨울에 내리던 흰 눈은 차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