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지

<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by 깜지

나의 필명, 깜지는 '까만 종이'의 줄임말이다. 90년대 생들은 아마 익히 알고 있는 단어라 생각한다. 나의 학창 시절엔 일명 '깜지'라고 불리는 공부 방법이자 과제이며 그리고 체벌이기도 한 이것이 성행했었다. 사실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 깃든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하얀 A4용지에 필기를 쭉 써 내려간다. 이때 하얀 빈 공간이 없게끔 모든 공간을 필기하기 때문에 종이를 검게 만든다고 하여 깜지라고 불렸다. 깜지를 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에 힘이 들어가 손목이 금방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 방법을 무려 초등학생 때 해왔다는 사실에 지금에서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많은 추억이 생각나지만 그중에서도 깜지는 정말 빼놓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그런데 깜지라는 것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오래 남게 된 이유는 단순히 깜지를 쓰던 기억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사실은 '깜지'라는 단어가 무척 귀여웠다. 이유가 약간 하찮지만 그럼에도 단어 그 자체가 내 맘에 들었기 때문에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닉네임을 정할 때 '깜지'라는 단어를 꼭 끼워서 정하곤 했다(특히 게임할 때 많이 쓰곤 했다). 친구들도 나를 본명보다 깜지라고 부를 정도로 나의 일상에 자리매김하였다. 깜지라는 단어는 그렇게 특별한 의미 없이 나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작가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사실 지금도 본명과 필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당시에 나는 작가로서의 나의 롤모델이 가수 '요조'님이었기 때문에 내 실명보단 예명 같은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독특하고 이쁜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았다. '깜지'라는 나의 대표 예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깜지'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시집 '까만 종이 위 하얀 사랑'을 집필하기로 했을 때 깜지가 나의 필명이자 아이덴티티가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단어가 귀여워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쓴 이름이었지만 어느새 나는 이미 까만 종이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하얗고 순수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밝은 빛이자 하얀 종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얀 사랑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하얀 종이 위에 쓸 수 없었다. 까만 종이가 필요했다. 고통과 실패가 있어야 사랑이 더 순수할 수 있었다. 어둠을 받아들여야 반대로 더 밝게 빛나는 것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까만 종이가 되길 자청했다. 사랑하는 이가 어둠 속에서 더 빛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얀 종이 위에서는 보잘것없는 하얀 글자도 검은 종이 위에서는 글로써 완성될 수 있음을. 까만 종이 또한 하얀 글자가 있기에 쓸모가 있음을. 사랑은 어둠과 빛의 대비처럼 깊고도 아이러니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공존해야 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힘들게 열심히 필기하여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를 가득가득 채워 '깜지'를 만드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사랑도 그런 인고가 깃든 까만 종이였다.


내가 어둠이 되어도 괜찮았다. 내가 칠흑처럼 어두운 흙과 먼지가 되더라도 고통과 실패가 따라오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나를 통해 밝게 빛날 수 있다면. 어차피 나 또한 밝은 빛으로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사실을 믿고 어둠이 될 각오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둠과 빛이 만들어낸 순수한 사랑이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순수함과 위로를 담은 사랑의 시를 쓰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통스럽고 아픈 이별에 대한 시도 함께 쓰고 있는 중이다. 나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어둠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오히려 하얀 사랑이 어둠 위에서 더 밝게 빛날 수 있고 나 또한 그런 하얀 사랑을 온전히 품을 수 있으니까. 어둠을 외면한 하얀 종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필명 '깜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하얀 종이를 까맣게 물들이는 인생의 과정을 담아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필명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즐겁게 계속해서 글을 쓰며 하얀 종이를 까맣게 물들일 것이다.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면서. 낭만적인 사랑은 까만 종이 위 하얀 사랑처럼 어둠과 빛이 함께 노래하는 순수한 사랑과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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