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밤은 아름다웠으나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로마를 누비다2

by 빌레펠트


우리가 새벽부터 밤까지 로마시내를 돌아다니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1. 여행 첫날 아침, 너무 설레고 신난 나머지 체력 생각을 못하고 무리했다.


2. 로마에 체류하는 내내 '흐림'이 예보되어 비가 오지 않는 날에 무리해서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가지며, 오늘 일정에 대해서 동선정리를 하던 와중에 로마의 야경을 엄마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실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경투어는 보통 해 질 무렵에 만나서 10명~20명이 다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당일예약도 가능한 투어가 있었다. 다만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밤길이 걱정되었으나 여차하면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엄마, 야경투어라는 것이 있는데 로마의 유명한 관광지를 밤에 다 같이 둘러보는 거야. 가이드의 전문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로마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건데, 우리 둘이서만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가이드랑 투어객들과 다 같이 다니는 거야."


"어머, 그거 너무 멋지겠다. 나는 좋아!"


"근데 보통 3시간 정도 걸어 다니는데 괜찮겠어? 우리가 오늘 아침부터 돌아다녔잖아. 오후에는 콜로세움도 가야 하고, 포로로마노도 둘러봐야 하는데. 이미 그걸로도 다리가 아플 수 있어."


"엄마는 유럽여행을 위해서 한 달 동안 매일 만보씩 공원도 걷고 체력 준비를 해서 괜찮아."


"그래, 그럼 일단 예약할게! 오늘 조국의 제단, 포로로마노, 콜로세움, 팔라티노언덕을 갈 건데, 다들 근처에 몰려있거든. 구경하다가 카페 가서 쉬다가 맛있는 거 먹고, 야경투어까지 하고 오는 걸로 합시다!"


그렇게 우리는 호기롭게 야경투어를 예약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오늘 우리의 2차 오후 일정인

'조국의 제단-포로로마노-팔라티노 언덕'을 마치고, 콜로세움 입장시간까지 40여분 시간이 남아서 콜로세움 근처 카페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랬지만 엄마도 체력이 꽤 괜찮아보였다. 갓 짜낸 오렌지 주스를 시킨 엄마는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거 같다고 하셨고,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신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감명 깊게 보셨던 엄마는 그 시절 유행했던 '글래디에이터 슈즈'라는 샌들까지 사서 신고 다니셨다. 글래디에이터의 배경이었던 콜로세움 안으로 입장해서 사실은 훼손이 심해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저기쯤에서 황제가 앉아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던 곳이다' 등등 이야기를 나누며 인파 속에서 열심히 인증샷을 남겼다.


역시 밖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와서 직접 봐야한다는 엄마의 감탄을 듣고 나는 효도 레벨 +1을 적립했다.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야경투어 집결장소인 테르미니 역 근처로 갔고,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를 직접 맛보여드리겠다고 열심히 검색한 파스타집으로 갔다.

엄마는 "한국에서는 파스타가 어른 주먹만큼만 돌돌 말아서 나오는데, 여기는 한가득 주는구나."라고 감탄하셨지만 맛은 한국이 더 낫다고 평하셨다.






마침내 테르미니 역에서 야경투어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쌍둥이가족, 신혼여행 커플, 아빠와 9세 아들, 중년 부부, 엄마와 나 이렇게 12명이 오붓하게 모였다. 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1 정거장 이동하기로 하고, 가이드가 나눠준 수신기에 이어폰을 꽂고 본격적으로 투어가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이어폰을 통해 '로마 지하철 소매치기에 대한 에피소드와 주의사항'이 이어졌다.

우리 투어그룹은 지하철을 탔고, 1 정거장만 가면 된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가이드의 "어!? 왜 그러세요? 훔쳐갔어요?(~~~이탈리아어~~~) 괜찮으세요!? 없어진 거 없어요?"라는 다급한 말이 들려왔고, 지하철 문은 닫혔다가 열렸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지하철 문이 닫혔고, 이어폰에서 가이드의 "다행입니다. 조심하셔야 해요. 여러분 방금 급하게 내린 여자애들 5명이 여기에서 소매치기로 활동하는 애들이에요. 얘네 엄마들은 지하철 안 타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애들이 활동을 하는거에요. 방금 전에 저희 손님이 지갑을 애들한테 뺏겼다가 바로 다시 낚아채셔서 애들이 지들끼리만 내려버렸어요." 라는 말이 이어졌다.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뺏겼다가 쫓아가서 지갑을 다시 낚아채서 지켜낸 분은 사실 우리 바로 앞에 서계셨고, 갑자기 "어!?"이러더니 문쪽으로 성큼성큼 이동하시길래 뭘 떨어뜨리신 줄 알았다. 눈앞에서 어쩌면 타겟이 우리가 될뻔한 상황에서 엄마는 잔뜩 긴장하며 가방 입구를 손으로 덮었다.



긴장도 잠시, 낮에 왔던 콜로세움과 조국의 제단의 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가이드의 유머코드도 잘 맞아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야경투어는 콜로세움 - 조국의 제단 - 성천사의 다리 - 나보나광장 - 판테온 - 트레비분수로 이어졌다. 지하철 1회, 버스 1회를 탑승하긴 했지만 성천사의 다리에서부터 종료지점 트레비분수까지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모든 게 다 아름답고, 투어그룹원들도 매너 있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엄마는 성천사의 다리에서 눈을 감은채 걸으셨다. 갑자기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얼른 눈을 떴다는 후기를 듣고 웃펐다.



판테온에 이르자 우리는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며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에도 뒤로 슬쩍 빠져서 주저앉아 쉬었다. 마침 판테온 근처에 유명한 젤라또 가게가 있다며 다 같이 젤라또를 먹었다. 엄마는 이 날 먹었던 젤라또를 여행 내내 말씀하셨다. 아마 그렇게 피곤한 상황에서는 어느 젤라또를 먹든 인생 젤라또가 될 거 같다.


트레비분수에 다다르자 마침내 우리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아침 7시에도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녁 9시의 트레비분수는 떠밀리다시피 걸어야 할 정도의 인파였다. 종료지점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공간이 없어서 경찰차 옆에 옹기종기 모여서 수신기를 반납하고 투어비용 잔액을 지불했다.


마지막까지 친절했던 가이드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트레비분수를 배경으로 그룹별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가이드의 권유로 사진을 찍었다. 분명히 우리는 마지막이니까 활기차게 팔을 쭉 뻗는 포즈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눈을 풀렸고 얼굴은 번들거렸으며 표정이 썩어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가이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우리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택시나 버스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만큼 사람이 많았다. 엄마와 나는 그냥 아침에 걸어갔던 길로 쭉 걸어 올라가자는 대화를 마지막으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허리를 손으로 받치면서 걸었다.


이윽고 숙소 1층의 명품브랜드 마크가 보이기 시작하자, 동시에 "다 왔다."라고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들어와서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다시는 이렇게 무리하지 말자."라고 했고, 엄마는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니? 점심때까지는 우리 좀 쉬자."라고 하셨다.


휴대폰 걸음수를 보니 3만보가 훌쩍 넘는, 23km를 걸었다.



다리를 풀어주는 파스를 발바닥과 다리에 잔뜩 붙이고, 보온 물주머니에 온수를 채워 엄마에게 안겨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기절했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 본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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