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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Aug 30. 2020

기나긴 집콕 속에 지난 기억들을 불러 오는 날

작가라서

오늘은 책에 대한 감상보다 내 이야기를 좀 길게 해보려 한다.


그러니까, 그건 2000년 여름의 일이었다. 2000년이 되었지만 세상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나 또한 여전히 별 볼일 없는 중학생이었다.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새로운 도덕 선생님이 아주 특이한 분이라서 “여자는 남자와 해마가 달라서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다.” 같은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바람에 나에게 ‘저 놈 꼴 보기 싫어서라도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전투 의식을 심어준 것 정도랄까. 물론 그렇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았다.


아직은 배불뚝이 TV가 우리 집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던 그 때, 그 볼록한 화면에서는 종종 주말특선 같은 이름으로 영화들이 방영되었다. 요즘처럼 넷플릭스 같은 것도 없었고, 영화관은 어른이 되어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터라(당시 내 용돈으로는 영화표를 감당할 수 없었다) TV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리고 그 날은 TV에서 낯선 무협영화가 방영되었다. <풍운>이라는 영화였다. 한 여자를 두고 다투던 두 남자가 우연히 여자의 아버지가 사실 자신들의 철천지원수였음을 알게 되고 복수하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내용은 모르겠고 곽부성의 외모에 푹 빠져서 열심히 보았던 것 같다. 게다가 곽부성이 맡은 캐릭터는 냉혈한이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절대 불변의 순정을 바치는, 사실 현실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초판타지급 캐릭터였으니 반하지 않을 수가. 문제는 그 순정을 받는 대상인 여자 캐릭터였는데, 두 남자 사이에서 이리저리 마음만 갈팡질팡하며 온갖 민폐를 끼치다가 중간에 어이없이 죽어버린다. 수동적인 캐릭터의 끝판왕인 이 여주인공 때문에 나는 보는 내내 흥이 깨졌다. 아니, 이렇게 멋있는 배우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돈을 펑펑 퍼부어 CG까지 화면 가득 발라 놓고는 여자주인공은 이 따위로 설정해 놓는다고.


영화 <풍운>의 곽부성(지금 다시 보니... 음...)


긴긴 여름방학 덕분에 시간이 남아돌았던 내 머릿속에는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며칠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컴퓨터를 켜고, 한글문서를 열었다.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느라 당시 400타를 넘는 스피드를 자랑하던 타자 실력 덕분에 순식간에 서너 페이지를 써내려갔다. 아주 용맹하고 뛰어난 검객인 여자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세상을 떠돌며 점점 더 고수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부끄럽지만 그게 내 첫 소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다시 그걸 읽어보느니 차라리 <풍운>을 열 번 정도 돌려 보는 게 손발이 덜 오그라들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주 열심히 썼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다음에도 계속 썼다. 매일 하교하면 책가방을 바닥에 던져 놓고 한글 문서부터 켰다. 다음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도 쓰고, 떠오르면 거의 밤을 새울 듯이 썼다. 학교를 가니 또 도덕 선생님은 “데미안도 모르는 너희를 데리고 무슨 수업을 하겠냐.”는 새로운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바야흐로 지금 내 머릿속 세상에서는 천하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고, 천 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 진행 중인데 현실의 잡음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나의 알은 깨어지고 있었다.


요즘 종종 작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편집해 놓은 책 <작가란 무엇인가>를 펴서 눈에 띄는 대로 한 페이지씩 읽고 있는데, 꽤 재미있다. 실은 도저히 예전처럼 신나게 타자를 두드릴 수가 없어서 강제 동기부여 혹은 자기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읽는다. 그 중 애덤 필립스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답한 내용을 옮겨 본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그저 믿고 있는 것을 쓰는 게 아님을 압니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또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씁니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갔던 것 같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세상의 별 볼 일 없는 아이가 아니며 어떤 고유한 존재임을 나 자신에게 입증하기 위해 나는 매일 상상의 세계를 끊임없이 직조했고, 사춘기의 격동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고등학생이 되고, 이제 정말 공부 때문에 글쓰기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쯤 해서는 내 컴퓨터에 거의 삼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글이 쓰여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그것도 엄청난 희열에 사로잡혀서 썼다는 게 한 페이지 가득 쓰는 것조차 힘겨운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 때 우연히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한 번 바꿔서 써볼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의 여름, 나는 그렇게 ‘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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