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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Aug 19. 2020

무더위보다 바이러스가 무서워 마스크를 벗지 못한 날

인간의 흑역사

2020년 달력을 처음 펼쳤을 때가 생각난다. 만화영화에서나 봤던 연도가 현실이 되다니. ‘원더키디’에서처럼 우주로 모험을 떠나는 정도는 아니어도 무언가 세계가 열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새로운 세계가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주복 대신 마스크로 중무장한 신세계라니.


먼 훗날 2020년은 인류사에서 흑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까.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짙어 보인다. 애초 중국에서의 미흡한 대처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우수한 대처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 이 나라에서조차 좀 잠잠해질만하면 어이없이 방역에 구멍이 뚫리는 걸 보면 헛웃음마저 나온다(제발 검사를 거부하는 것만은 말아 주시기를).


이쯤 해서 지난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에서 한 구절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일은 깨끗이 해결해놓았다 싶을 때 슬금슬금 꼬이기 마련이다.


2003년 사스 사태가 지나가고 난 뒤, 설마 이십 년도 안 되어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중국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일어났다. 이번에도 역시 박쥐로부터 시작된 변종 바이러스였고 사태는 좀 더 많이 심각했다. 우한의 상황을 전해오는 뉴스들을 보면서 인수공통전염병으로 한 도시가 폐쇄되는 정유정의 소설 <28>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지독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팬데믹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예견한다. 아마 <인간의 흑역사>의 저자인 톰 필립스도 동의할 것 같다. 그는 책 곳곳에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들의 영역을 남김없이 침범해가면서 결국은 그 과오를 돌려받는 흑역사가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들려준다. 아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잘못은 박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라고.


그렇다. 박쥐에게는 죄가 없다. 사실 인간이 굳이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영역까지 침범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의 많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쥐가 (자기 의지는 아니고 바이러스로 인해 간접적으로) 죽인 사람 수보다 사람이 (물론 자기 의지로) 죽인 사람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기도 하다. 이 전세계적인 거리두기 상황 속에서도 어딘가에서는 거리두기는 고사하고 총질이 난무하는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곳에서 죽음의 공포는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느끼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잔인하고 매캐할 것이다.


전쟁에 수반되는 그 난리 법석과 폐쇄적 사고와 마초적 뻘짓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망하는 재주를 타고났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2020년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 해로 기록되지도 않을까 하는 희망을 여전히 떨칠 수 없다. 물론 어떤 배움도 수많은 이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고통과 죽음이 단지 흑역사의 한 장면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톰 필립스가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인간사의 수많은 잘못들을 수집하여 <인간의 흑역사>를 쓸 때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의 먼 조상인 유인원 ‘루시’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는, 우리가 나무에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부디 2020년의 날들이 그런 날이 되기를 바라며, 흑역사에 이불킥을 하는 대신에 책장을 펴는 밤이다.





bgm.코드쿤스트_parach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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