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우리'라는 말을 반품할 수 있도록
“너 이거 반품할 거야?”
아니. 반품할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택을 달랑달랑 달고 다닌다. 가방에 달아놓은 인형의 택도 그대로이고, 오늘 입고 나온 외투의 안쪽에도 택이 그대로 달려 있다. 외투의 택은 오늘 집에 가서 뗄 예정이지만 인형에 달려 있는 택은 사실 반년이 넘도록 떼지 않고 있다. 하긴 집에 있는 방석의 택은 일 년이 넘게 그대로인걸.
물건을 사자마자 바로 택을 떼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안다. 음, 어쩌면 대부분이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늘 택을 떼기까지 고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떼지 않고도 사용에 큰 불편이 없다면 쭉 안 뗀 채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택만 그런 건 아니다. 보호필름도 잘 안 벗긴다. 싱크대 개수대의 보호필름을 몇 년이 지나도록 안 벗기고 사용했다가 나중에 잘 안 떼어져 애를 먹기도 했다. 책도 절대 책등에 주름이 갈 정도로 활짝 펴지 않는다. 코트 주머니의 박음질도 뜯지 않는다. 제품을 담아두었던 박스마저 잘 버리지 않아 찬장 한 칸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올해 이사를 하면서 그 찬장을 비우고 있자니 이 정도면 살짝 강박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지경이었다.
내가 유독 새것 같은 상태를 좋아하는 걸까. 택도, 보호필름도, 박스도 그대로인 그런 상태 말이다. 사실 누구나 새것 같은 상태를 좋아한다.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팔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기 마련이다. 충분히 낡았음에도 택을 떼어내 버리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무엇인가가 내 것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던 것 같다. 택과 물건을 연결하고 있는 그 투명한 끈을 힘주어 뚝 끊어내는 일이 나에게는 늘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지고는 했으니까.
난 이제 당신 물건이고 되돌릴 수 없어요.
무언가가 자기 본연의 꼬리표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나에게 속해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책임감은 늘 너무 묵직했다. 그래서 아직은 언제든 반품하거나 환불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의 관계이기를 물건에게도 사람에게도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택이 있다. 나는 자주 그 택을 떼기를 주저하는 쪽이었다. 언제든지 서로를 반품하거나 환불할 수 있도록 새것 같은 관계로 두기 위해 늘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운 만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내 태도를 배려로 읽고 간 인연들도 있었지만 비겁함으로 읽고 간 인연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떤 마음의 택들은 내가 떼어낸 줄도 모르게 이미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배려도 비겁함도 아닌 그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소유물이 되어 낡아 가고 있다는 것을.
*택(Tag): 옷이나 물건에 상표나 세탁 방법 등을 설명하는 꼬리표. 태그라 읽어야 적절할 듯하나 수 십 년 간 계산대 앞에서 “택 떼면 교환 및 환불 안 됩니다.”라는 말로 이 단어를 학습하였기에 택이라고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