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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Nov 02. 2022

고양아, 아빠를 부탁해

고양이에게 배우는 이별의 자세

누구나 이별을 배운다. 이제는 아빠가 꿈에 나오지 않는다. 아빠의 영정사진은 2층에 올려 두었다. 오래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 바로 옆자리이다. 2층에 올라갈 때마다 “아빠, 안녕.” 하고 제법 슬프지 않게 인사한다. 식욕도 다시 돌고,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오늘은 어쩌면 울지 않고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정원에는 고양이 두 녀석이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졸고 있다. 그 중 노란 녀석의 이름은 금냥이다. 아빠가 떠나기 전에 지어준 이름이다. 아는 분이 고양이가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입양할 곳을 찾는다고 해서 데려왔었다. 다른 녀석은 아빠가 병원에서 의식 없이 있으실 즈음에 갑자기 나타나 눌러 살게 된 아이이다. 그래서 따로 지어준 이름이 없다. 그냥 등허리가 까맣고 배만 하얀 녀석들을 통칭하는 명칭인 턱시도로 부른다.


금냥이와 턱시도는 사이가 좋다. 둘 다 수컷인데다 턱시도가 덩치도 더 작아 금냥이에게 내쫓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단짝이 되어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원래 금냥이의 단짝은 턱시도가 아니었다. 턱시도의 단짝도 금냥이가 아니었다. 금냥이에게는 자기 형제인 은냥이가 있었고, 턱시도에게도 자기 형제인 고등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아빠 영정사진을 들고 집으로 막 돌아왔을 때 우리 집 정원에 살던 녀석들은 도합 네 마리였다.


그 중 가장 먼저 떠난 것은 턱시도의 형제인 고등어였다. 역시나 특별한 이름 없이 고등어 무늬 털을 가져 고등어라 불렸던 태비였다. 턱시도보다 덩치도 크고 든든한 형 같은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밤 로드킬을 당했다. 그 후 턱시도는 혼자가 되었다. 녀석이 외따로 웅크려 앉아서는 금냥이와 은냥이가 노는 걸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이제 겨우 생후 5~6개월밖에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은 벌써 혼자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은냥이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로드킬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아마 수컷이다 보니 암컷을 찾아 나선 거라 믿고 있다. 설마 고등어처럼 나쁜 일을 당한 건 아니길 바라며 동네 산책을 다닐 때마다 어디에서 집 나간 은냥이와 마주치기를 고대하는 중이다. 은냥이가 사라진 후 며칠간은 나를 볼 때마다 꼭 뭘 말하려는 듯이 한참을 야옹야옹 울던 금냥이는 다행히 금방 적응해서 이제는 턱시도와 단짝이 되었다. 둘 다 이제 제법 커서 하루 종일 함께 장난을 치지는 않지만 함께 사료도 먹고 낮잠도 자며 평화롭게 지낸다. 물론 언젠가는 이 두 녀석도 제각각 혼자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 집 정원에는 이미 수많은 고양이들이 살다가 떠나갔다. 오래 전에 턱시도와 고등어처럼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길고양이 하나가 새끼를 키우고 그 새끼가 다시 새끼를 낳으며 대를 이어 살았었다. 한 때는 꽤 크게 일가를 이루었던 녀석들이 고등어처럼 로드킬을 당하기도 하고, 은냥이처럼 집을 나가기도 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하면서 모두 떠나갔으니 생각해보면 이 정원도 수많은 고양이들과의 이별을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고양이들의 ‘최애’였던 아빠도 이 정원을 떠나갔다. 멀리서 아빠 차 소리가 들리면 벌써 귀를 쫑긋 세우고 마중 나가던 녀석들이 지금쯤은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아빠를 만났을까. 그곳에서도 아빠 발에 제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하고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동물들은 저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말로는 귀찮다고 하면서도 퇴근길에는 고양이 간식을 사오고, 겨울이면 추울까봐 집을 만들어 주었던 아빠를 고양이들은 유난히 잘 따랐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저 어린 고양이들조차 엄마와 이별하고, 형제와 이별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나도 이별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울지 않고 글을 쓰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제법 잘 배워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빠가 만들었던 고양이 집이 새로운 고양이들의 겨울 보금자리가 되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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