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함께 그네타기
나를 닮은 아이에게.
길을 걷다가 놀이터를 발견했다. 나는 그네타는 걸 좋아해서, 그네가 보이면 지나치지 않고 10분 정도는 꼭 그네를 탄다. 마침 그네 한 자리가 비어있었고, 먼저 그네를 타던 아이는 맨발로 그네를 신나게 타고 있었다. 나도 그 옆자리에 앉아 처음으로 신발을 벗고 그네를 타보았다.
그네를 타던 우리는 어느 순간 같은 흐름을 타고 앞으로, 뒤로, 박자감있게 움직였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그네를 타는 그 순간을 아주 즐기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동질감에 말을 건네볼까, 하다가 아이가 먼저 몇살이에요?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중학생인 척 하려다가(..?) 원래 나이를 말했고, 너는? 하고 되물으니 13살이요. 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아주 궁금한 걸 질문했다.
왜 맨발로 그네 타?
신발을 벗으면, 더 멀리갈 수 있거든요.
봐봐요. 엄청 높죠.
하면서 아주 멀리 그네를 탔다.
나도 그 아이를 따라 힘차게 그네를 탔다. 그렇게 둘 다 한참을 타다가, 어지러움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내려올 준비를 했다. 원래 그네를 멈출 때는 발로 바닥을 탁탁 치면서 천천히 멈춰야 하는데, 신발을 벗으니 양말이 더러워질까봐 조심스러워 그네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언니인 내가 징징거리자 아이는 어른스럽게 맨발로 먼저 착지한 후 내가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근처살아?
아뇨. 길 가다 잠깐. 언니는요?
나도 길 가다 잠깐. 그네 타는 거 좋아해?
네. 좋아해요.
나도.
먼저 호기롭게 질문을 해오던 아이는, 처음 보는 나와 대화를 줄곧 해온게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곤 아 재밌었다. 거북이빵 사먹어야 겠다. 하며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지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지폐를 한장 꺼내어 홀연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네 타는 걸 좋아하는 것. 신발을 벗는 것 처럼 색다른 걸 시도해보는 것. 사람들이랑 친해지고는 싶은데 말을 이어나가는 게 어색해서 말을 끝맺지 않고 도망쳐버리곤 하던 모습까지 고스란히 나를 닮았다. 그 아이와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친구는 잘 사귀고 있는지, 속에 걱정거리는 없는지, 그네를 타는 것 말고 무얼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이 언니는, 너가 그네를 타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많은 것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문구점에서 500원짜리 간식을 사먹는게 나름의 사치였던 나는 이제 카페에서 만원은 어렵지 않게 지출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쉬이 내뱉지 못하던 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도 너털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싸이월드 배경화면에 심심치 않게 담기는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꼭 비행기를 타고 꼭 가볼거야’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학교 안 운동장에서 그네를 멀리, 아주 멀리 타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달래곤 했지만, 지금은 카파도키아 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왔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네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10년 후의 너도 여전히 그네타는 걸 좋아하고 있을까?
너가 거북이빵 사먹는다고 할 때 언니가 사줄게! 하고 한 마디라도 덧붙여볼 걸.
두 개는 사줄 수 있었을 텐데. 자리에 앉아 빵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가끔 그네를 타러 만자고 약속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토요일 오후 2시에 그 자리에 가면 또 볼 수 있을까.
나를 참 많이 닮은 아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