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서울대 로스쿨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꼭 맛있는 걸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만나자고 했다.
대학시절, 굉장한 경험주의자인 나는 참 이것저것 많은 걸 경험했다. 식품영양학과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활동이었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들도 하나같이 공통점이 없다. 갓 20살이 된 힙합댄서, 사찰음식을 하는 중년의 어머님, 20대 초에 IT회사를 창업한 동갑내기 친구,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이 날 만나게 된 로스쿨생들은 노동근로법을 공부하는 정책학과 소모임을 하며 알게 됐는데, 정책학과도 아닌 내가 듣고 싶으니 끼워달라, 하며 깍두기로 들어가선 알게 된 친구들이다.
언제나 약자를 변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해왔던 친구. 그 포부가 단지 포부로 끝나지 않게, 실질적인 결과물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고 난 이상을 가진 행동주의자란 참으로 곧고 단단한 것이라는 걸 그 친구를 보며 배웠다.
복작거리는 선술집. 낡은 나무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대학을 갓 입학한 그때와는 다르게 책임감과 세월이 더해져 성숙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생선구이와 맥주를 시켰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며 근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로스쿨 단톡방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화를 들려주었는데, 웬 이름이 ‘사랑합니다’라는 분이 있길래 누구시지, 했는데 알고 보니 60대 할아버지가 뒤늦게 공부하고 싶다고 로스쿨에 들어오셨다고. 참 학교가 학교다 보니 부모님이 어디 어디 장관님부터 해서 굉장한 금수저들이 많더라- 그렇게 재잘거리다 보니 더운 듯한 음식 앞의 열기 속에서 볼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서로의 진심을 전하기에 충분히 무르익은 시간이 되었다.
축하해, 너는 그토록 원하던 결실을 이루었고, 이렇게 전문성을 갖게 된 네가 참 멋지다-
단순한 축하인사 같지만 참으로 진심을 눌러 담아 내뱉은 말.
그 말에 친구는
나는 네가 가진 경험이 참 부러워. 나는 한 가지 것만 해오다 보니 다른 걸 너무 못해본 거 같아-
너는 하고 싶은 걸 정말 ‘다 해보는’ 사람 같다고. 마침 이때가 얕은 경험이 많은 나의 전문성을 줄곧 의심하던 시기라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 말이 상당히 의외랄까,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를 진득하게 파고든 친구와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본 나.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다.
내가 끝까지 건너지 못했던 소나무길 너머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어.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는 거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소나무길을 걷다가, 벚꽃길이 예뻐서 그 길로도 걷다가, 해안가도 가봤다가, 이제는 밀림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중이라고. 근데 너는 어쨌든 내가 스쳐 지나간 그 소나무 길을- 여전히 걷고 있잖아.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거니까.
결국 무엇을 선택해도 포기하는 게 있는 거라면. 나는 모든 걸 갖지 못했다고 아쉬워해야 할까? 결국 너는 - 어떤 풍경을 가장 보고 싶은데? 너의 길에는 어떤 형태의 돌과, 나무와, 열매들이 열리기를 바라는데? 그 모든 걸 갖지 못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함빡 담아서 심어보라고.
한 때 내가 걷는 길이 울창하지 않은 난잡한 꽃길에 불과한 거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나는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걸 알고 싶었기에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산재된 사람이었다. 나와는 정말 달라 보이는 사람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그릇도 많이 커졌고, 그 과정 속에서 결국 제일 큰 깨달음을 줬던 건 사람이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업이다, 경계를 흐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좌우명처럼 읊조리게 된 것도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내 삶 속에 자리하고 나서다. 지금에서야 그 모든 것들이 혼용된 지금이 마음에 든다. 귀하게 모셔온 꽃과 나무들이 시들지 않게 꾸준히 물을 준다면, 나의 길은 아주 화창하고 아름다우니.
그러니까, 그 모든 걸 다 겪을 수 없을지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한 거 아닐까.
나는 소나무 수풀 가득한 그 숲냄새가 참 좋더라고. 너의 길을 보면 참으로 울창하고 푸른 마음이 들더라.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가끔 이렇게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되지 않을까. 내가 끝까지 걷지 못했던, 그 소나무길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