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기업, 이름 있는 중견기업은
이력서에서 한 번, 서류에서 한 번, 면접에서 또 한 나를 걸러낸다.
그리고 남는 곳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래도 경력은 쌓을 수 있잖아’라는 그곳.
우리는 그걸 좆소라고 부른다.
천안·아산에서 괜찮은 밥벌이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지가 그나마 많은 서울로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면접을 보던 당시에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줄여서 청내공이라는 정부 지원 제도가 있었다.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국가에서 연봉의 일부를 대신 지원해 주는 구조였다.
문제는,
이 제도를 너무 당당하게 악용하는 회사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기억하기로 어떤 회사의 연봉은 3,200만 원이었다. 공고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니 그중 연 800만 원은 국가 지원금, 즉 청내공이었다.
사실상 회사가 주는 돈은 2,400만 원.
하지만 공고에는 아무 설명 없이 연봉 3,20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속으로 ‘이건 연봉이 아니라 합계잖아.’ 심지어 2년만근을 해야 탈 수 있는 조건이였다.
그래도 그걸 마치 회사 복지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표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나름 규모가 있다고 생각했던
다이소 아성 면접도 봤었다.
그런데 면접 장소는 정리되지 않은 물품들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는 공간이었다.
규모가 있다고 환경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그때 또 한 번 배웠다.
그래도 한 가지 기준은 있었다. 초초초소기업만은 피하자.
결과적으로 나는 강동구에 있는 직원 15명 남짓의 회사에 입사했다.
직무는 무역사무직.
그리고 무역팀은…
나 혼자였다.
전임자가 1주일 인수인계를 해주고 나갔다.
그 이후로 무역과 관련된 모든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그 덕분에 2년 4개월 동안 사용한 연차는 아마 3일 정도였던 것 같다.
연차수당은?
물론 없었다.
갖가지 이유로 연차를 사용한 것으로 쳤다.
대신 일을 정말 많이 했다.
머리에 스팀이 날 정도로 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 보니 퇴사할 즈음에는 그 일만큼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작은 회사의 특징은 명확하다.
사장님의 말이 곧 법이다.
사장님 바로 호출, 사장님 직접 지시, 사장님께 바로 보고.
성격 급한 사장님은 내가 내 일에 관한 모든 걸 이미 알고 있길 바랐다.
나중에는 원하던 수준을 넘어서 원가절감을 해내는 나를 보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연봉 협상 때는 내가 많이 챙겨줄게.”
그리고 연봉 협상의 결과는 이랬다.
3,000만 원 → 3,300만 원.
그분이 말한
‘많이’의 기준은
300만 원이었다.
그 순간
아, 이게 좆소의 현실이구나 싶었다.
열심히 하면 인정은 받는다.
다만 그 인정은
생각보다 아주 소박한 금액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시절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 번아웃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건 사실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