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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Jul 03. 2023

억울하면 지는 거라고?

나만의 룰이 있잖아!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너만 그러니까!


살다 보면 억울함 투성이다.


끝도 없이 꼬리를 무는 강변도로. 이십여 분 넘게 몇 백 미터도 못 갔는데 불쑥 얌체같이 끼어든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쌍욕이 올라온다.


교차로의 신호등이 바뀐 순간. 앞 차가 가지 않아 멈춰있는데도 그 새를 못 참고 뒤에서 빵빵 거린다. 열이 확 오른다. 양반도 운전대 잡으면 상놈 된다고, 욕 한번 내뱉는다고 후련하진 않다. 차 안에 있는 동안 억울함이 함께 간다.


이런 경우는 뭐 다신 볼일 없는 사이니까 그런대로 넘어갈 만하다. 문제는 좋든 싫든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야 하는 조직에서다.


남녀노소 '팔도 잡놈'들이 모인 회사는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십여 년 사이 20~30대 MZ 세대들이 대거 들어왔다. 애사심이 없다면서 이들의 개인주의 성향을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스펙에선 7080, 8090 세대가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이른바 역대급이다. 대한민국 공/사 조직의 상황이 비슷하다.


출처 Unsplash


육중한 배가 물 위에 뜬 채 목적지까지 가려면 선장, 조타수, 선원까지 손발이 맞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부서와 직급으로 이루어진 조직에서도 구성원 간 협력, 각자의 태도와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조직 내에서도 모든 세대가 서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라테는 말이야", "하라면 해"라는 말을 하는 순간 개저씨, 소저씨의 낙인이 찍힌다. 답답함과 화가 슬슬 쌓여가지만 너도 나도 입조심하는 이유이다.


뜻밖의 사고는 엉뚱한 데서 터진다. 회식이나 모임 자리에서 젊은 여직원에게 툭 던진 말이 성희롱이라며 신고가 들어가 징계까지 이어진다. 가해자는 그런 일 없다는데 피해자는 아니란다. 징계심사위원회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분위기는 싸늘하다.


사내 익명게시판을 보노라면 가히 억울함 천국이다.


왜 나만 연고도 없는 지방을 돌아야 하느니, 일 년 죽게 일했는데 내가 받은 근무평가는 왜 이 모양이냐느니, 평도 안 좋은 동료가 왜 나보다 먼저 승진을 하냐느니, 왜 내가 휴직한 사람의 일까지 떠맡아해야 하냐느니 등등. 그렇게라도 호소해서 억울함이 풀리면 다행이지만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내 차례인데 어처구니없이 진급에 밀리거나, 내 옆에 있는 자와 도저히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이유를 들며 휴직을 내버리기도 한다. "에라, 엿이나 먹어봐라" 하는 복수심에서다. 부서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빠져 일이 밀린다. 남은 직원들도 곤욕이지만 월급이 끊기는 본인도 타격이 크다. 그래서인지 합법적 '꼼수'가 유행한다. 병가와 연가를 합쳐서 불시에 쉬어버린다. 매년 그렇게 해도 최대 석 달은 월급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월급 못 받고 쉬는 자 위에, 돈 받고 쉬는 자 있는 셈이다.


조직에서 뭘 바라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시기, 철철 넘치던 열정과 사명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랜다. 위에 살살 비비는 자가, 일보다 입으로 일하는 자가 잘나가는 게 보인다. 곰개미처럼 묵묵히 일하는 자보다, 쇼타임에 능하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하는 자가 윗사람 눈에 띈다. 법에 나온 제도를 집행하는 건 샴푸를 몇 개 파는 것과 엄연히 다를 텐데, 휘황찬란한 계량 수치로 자신의 실적을 도배한다. 자기가 모든 일을 다한 식이다. 우주 대스타가 따로 없다. 이의신청이 끊이질 않지만 될 사람이라며 위로 올려준다. 함께 하자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 몰라라 하는 선후배의 변심도 뒤통수를 아프게 한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포스터 


아~ 이곳은 이런 데였구나, 믿을 만한 자 없구나, 하며 자책한다. 뭔 일이 터지면 나 몰라라 하고 줄행랑을 질 수도 있겠구나, 개탄한다. 내 콧물이 석자나 어졌는데도, 나도 아랫사람들에게 그런 자로 비칠까 슬슬 걱정이 된다.  * 참고로 지금까지 나왔던 자(者)는 '놈' 자이다.


늦게서야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게 사회이고 조직의 생리라고.


아니 원래 그랬는데 직접 겪고 확인했다는 말이 맞겠다. 제빵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맛있게 빵을 만든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탁월한 통찰이다. 본인이 죽거나 제 발로 조직을 떠나기 전에는 별다른 치료 약이 없는 '월요병'을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회사에 나온다. 가족들과 외식하고 마트에서 장보기 위함이지 내 옆 동료 주머니를 불려주려는 게 아니다.


조직은 거대한 군대다.


조직도 시장이나 국민 또는 내부 직원들과 싸운다. 그러기 위해선 사령관부터 졸병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운영의 룰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운영의 룰은 거대하고 복잡하다. 내가 어떻게 해보려 해도 어찌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 건 조직의 주인은 국민임에도, 조직과 구성원을 주무르려는 힘이 내외부에 넘쳐난다. 배가 떠서 무리 없이 흘러가는 건 남들 잘난 덕인데도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안다. 안쓰럽다.


운영의 룰을 만든답시고 행해지는 조직 계발의 부속품이 되지 않겠다.


대신 나를 풍요롭고 강하게 만드는 자기 계발에 몰두하겠다. 속세의 공부도 좋지만 먼저 마음을 돌보련다. 나 자신을 토닥토닥해주겠다. 그러니 조직이 그려놓은 룰에서 졌다고 스스로 탓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룰은 내가 만들고 정하면 된다.


그 룰에서는 내가 으뜸이니까!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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