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건 참 어렵다.

by 으나

올해 설날에는 엄마를 뵈러 외가에 내려가지 않았다. 외가에 간다고 해도 이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고,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큰외삼촌께서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한 달이 되던 작년 2월 말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가에 가면 엄마와 이모네 가족, 작은 외삼촌네 가족만 뵐 수 있다.


내 동생들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다. 나쁘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안 좋아졌다. 큰외삼촌의 암 판정을 계기로 엄마와 여동생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다. 속상한 엄마는 내게 하소연하였는데 나는 누가 들어봐도 여동생이 잘못한 거라고 느꼈다. 나는 여동생이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사과하길 바라는 마음에 사과를 권했다. 그러자 여동생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냐면서 화를 씩씩 냈다.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로 여동생은 크게 화냈다. 그게 여동생과 마지막 통화였다. 생일날 선물도 보냈지만 그 후로 연락 없이 지내고 가족 단톡방에는 툭하면 나간다. 그러면 남동생이 계속 초대한다. 여동생은 내가 뭘 해도 마음이 안 풀릴 거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 설날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내가 어렸을 때 누나답게 행동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늘 죄스럽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나 또한 내 시간, 내 에너지를 쪼개며 돌봐주었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한 것에 괘씸하다는 이중적인 마음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다가 지금은 자기 밥벌이하고, 나에게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친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가라는 말을 해주는 대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아버지는 직장암으로 수술을 2회 차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난 뒤 연락을 끊은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뒤늦게 남동생을 통해 알게 된 엄마에게 듣게 되었다. 남동생은 내가 우울증으로만으로도 힘든 걸 아니까 배려해 준 것 같았다. 남동생은 올해 설날 외가로 내려갔다. 나는 직접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엄마를 통해 안부를 전했다.


엄마는 음…. 왜 우리는 서로를 아끼면서도 서로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지난여름 살이 찐 나에게 엄마가 ‘내가 본 네 모습 중에 제일 최악이야’라는 필터를 걸치지 않는 말을 하셨다. 그 말에 상처받아서 작년 추석도 이번 설날도 안 내려가고, 일부러 설날 연휴에 일을 했다. 나도 살면서 분명 이와 비슷한 말을 엄마에게 하면서 상처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동생이나 나나 똑같을 수도. 하지만 이번 말은 정말 큰 상처라 살을 빼기 전까지는 엄마를 뵙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엄마에게 말하진 않았다.


가족이라는 건 참 어렵다. 어쩌다 우리는 가족으로 만나서 서로 상처 주고 뒤돌아서게 되었을까? 그래도 훗날 시간이 지날 때 아프거나 세상에 남아야 할 시간이 얼마 없을 때, 후회 없이 외로워하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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