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자친구와 함께 스티븐 킹 원작, 톰 히들스턴 주연의 영화 <척의 일생>을 조조로 보았다. 영화관 앱에서 해당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를 읽었을 땐, 아포칼립스와 미스터리가 혼합된 스토리라 생각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예매했다. 그러나 3막부터 시작되어 1막으로 끝나는 전개와, 사실 내가 기대했던 아포칼립스가 일어나는 세계는 척이라는 사람이 39년 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온 우주이며, 이 멸망은 척의 다가오는 죽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에 놀랐다.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 1막에서 고등학생 척이 다락방에서 자신 인생의 큰 스포일러를 눈앞에 보게 되어도 그 스포일러에 두려움을 떨며 기다리기보다는 자신만의 우주를 차곡차곡 쌓아 만들어 가기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나는 어떤 우주를 만들며 살아왔는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어떤 우주를 만들고 있을까? 기쁨보다는 슬픔이,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불행하고 억울했던 기억들이 많다 보니 척의 우주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멋진 세계로 꾸며져 있지 않을 것 같다. 쓸쓸한 겨울이 계속되고, 뿌연 안개가 하루 종일 깔려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원인 불명의 이유로 무기력을 느껴며 삶의 재미를 모르고 살아간다. 일도 그저 먹고살기 위해 꾸역꾸역 한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도 희망의 빛은 있을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씩 달이 파랗게 밝게 빛나는 날이 있는데, 그 달빛을 보면 사람들이 머릿속에 우울과 무기력의 안개가 걷히고 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무얼 할지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날을 축제일로 삼아 달을 기리며 큰 축제를 벌이고 그날 하루만큼은 걱정, 시름, 고민은 잊고 기뻐하며 춤추고 지낼 것 같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내년에 돌아올 축제를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지 않을까 한다. 마치 매달 월급날을 기대하는 나의 마음처럼. 그런데 이건 2025년까지의 나의 우주이고, 2026년부터는 그 푸른 달빛이 좀 더 자주 떠오르는 우주로 바꾸고 싶다.
반짝이는 2026년의 우주를 만들기 이전에 2025년을 되돌아보자면, 지난 2025년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는 해였던 것 같다. 하이볼바에서 주 6일, 하루 10시간 쉬는 시간 없이 근무했다. 결국 링거까지 맞을 정도로 몸이 지치고, 월급도 밀려서 마음도 지쳐 현재 직장으로 도망치듯이 이직했다. 그렇게 이직해서 현재 매장 사장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홀서빙에서 메뉴 메이킹으로 업무가 변경되었다. 그동안 홀서빙만 해왔다가 메뉴를 제작해 보니 매장 운영에 대해 시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울증을 핑계로 흥청망청 돈을 쓴 대가로 매달 카드값을 내느라 통장에 돈이 남는 날이 없었는데, <서울 영테크>에서 상담사님께 무료로 재무 상담을 받은 덕분에 캐시 플로우를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카드값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소비패턴을 반성하고 재테크 관련 도서를 읽으며 금융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또한 나라에서 운영하는 <전국민 마음투자 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심리 상담을 받으며 치료를 하기도 했다. 지인 H가 소개해 준 상담사님이 무척 좋으신 분이셔서 상담 기간 동안 힘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여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우울증 치료 및 마음 정리에 대해 기록하다 보면 잊고 있던 내면에 숨겨진 희망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고 글을 쓰고 있다. 큰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신 아픈 기억도 있지만..…..
이렇게 2025년 내 우주는 힘들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새로 시작하는 2026년도 내 우주를 좀 더 다채롭게 채울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예정이다. 푸른 달빛이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매달 한 번씩 빛나 내 우주 속 사람들이 좀 더 자주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척의 일생>의 척처럼 인생의 스포일러를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 우주를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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