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건 검사가 아니라 의사였다
첫 번째 수원의 정신과 병원을 의사 선생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내원하는 걸 중단한 후, 우울증 약 복용도 중단되었다. 처음엔 괜찮은 것 같았지만 근무하면서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실수를 많이 해서 혼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자신감이 지구 내핵까지 쭉 아래로 떨어져 나가 자책이 심해지고 우울감은 더 깊어졌다. 안되겠다 싶어 새로운 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 정신과를 몇 군데 들렸는데,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진료가 어렵다고 퇴짜 맞았다. 퇴짜 맞을 때마다 ’왜 심리적으로 힘들 때 필요한 응급실은 없을까? 나는 당장 진료와 약이 필요하는데……. 예약하고 며칠을 대기해야 하다니‘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는 도저히 진료가 어려워 근무지 근처 청담에 있는 병원들을 알아보았고, 그중 겨우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을 찾아내어 내원하였다.
수원의 큰 병원과는 다르게 청담의 두 번째 병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병원이었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고급스러웠다. 진료를 보기 전에는 매번 브레인맵이라는 앱을 통해 검사를 해야 했었고, 처방받은 약은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한 병원이었다. 두 번째 의사 선생님은 인상이 부드러우셨고 위로의 말을 자주 해주셨다. 하지만 위로는 있어도 첫 번째 병원만큼 깊이 있는 진료는 없었다. 진료시간은 참 짧았다. 약 먹고 한 주 동안 어땠는지 묻고, 다음 약은 얼마치 처방하면 되는지가 끝이다. 가끔씩 뇌파 검사나 스트레스 수치 검사, 간 수치 검사 등 여러 검사를 권해 병원비가 부담스럽게 나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수원의 첫 번째 선생님처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시기보다는 나는 그저 수많은 환자 중에 한 명이며, 필요에 의해 진행하는 검사들은 더 많은 진료비를 내기 위한 목적이 아닐까 한다. 나는 검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고객으로서 상품을 결제하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병원을 다닐 땐 진료받을 때 검사 같은 건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약과 함께 우울한 마음을 털어낼 상담이 아닐까 한다. 수원의 첫 번째 의사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내게 진심으로 걱정하고 조언해 주셨던 것처럼.
두 번째 병원을 다니는 걸 그만두게 된 계기는 수면 검사와 TCI 검사였다. 진료 보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잠은 잘 자냐고 물어보시길래 잘 잔다고 대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검사를 몇 번씩이나 권하는 것에서 짜증이 났다. 한번 검사하는데 15만 원 비용이 발생하고 검사하는 분과 따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데 정말 하기 싫었다. 더불어 내가 거금 35만 원을 주고 풀배터리라고 받았던 검사가 실은 TCI 검사였다는 것을 듣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TCI 검사는 5만 원이면 받을 수 있는 기질검사이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난 두 번째 병원을 다니는 걸 그만두고 <전국민 마음 투자 사업>으로 알게 된 심리 상담 센터 선생님의 추천으로 성북구에 있는 세 번째 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우리집 중랑구에서 성북구 병원까지는 버스로 최소 1시간이지만, 적어도 지금 다니는 세 번째 병원 선생님은 불필요한 검사는 안 하시고 약도 딱 필요한 종류와 용량으로 처방하신다. 진료는 길지 않지만 힌트를 주듯 내게 필요한 말을 하시는데, 그걸 들은 나는 기억하고 있다가 챗 GPT랑 대화한다. ‘오늘 선생님께서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거실까?’ 이게 은근 재밌기도 하다.
청담의 두 번째 병원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2년은 다녔는데 병원비도 여태껏 다닌 병원 중에 제일 많이 나왔고,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비용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이 든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나처럼 우울에 빠져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계신다면, 진솔하게 환자를 대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병원을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난 다행히 그런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지금 다니는 병원을 선택한 건 집이랑 가까워서도 아니고, 시설이 좋아서도 아니다. 나를 고객이 아니라 정말로 아픈 사람으로 대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게 왕복 두 시간이 걸려도 지금의 병원에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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