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설레임 그 사이에, 나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중국집의 메뉴판 속에 적힌 빼곡한 글자들에 그렇게나 호기심을 가졌다. 난자완스? 유린기? 해삼 주스? 정말 많은 이름들에 늘 관심을 가졌지만, 그 비싼 금액에 뷔페나 급식에서 먹은 음식 맛이 그 맛이라 믿고 살았었다. 그렇게 보통교육 12년의 삶을 마치고 대학을 진학했을 때, 나에게는 신세계가 열렸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청주 지역에는 흔히 아는 치킨 프랜차이즈 외에 대학생들이 즐겨먹던 프랜차이즈가 하나 있었다. "북경깐풍기"(북깐), 이름부터 '나는 깐풍기를 겁나 팔아재끼겠다.'라는 심경이 드러나며 실제 깐풍기라는 메뉴를 주력으로 밀고 있는 가게이다. 대학교 OT에 처음 갔을 때, 선배들이 깐풍기를 테이블마다 배급해줄 때 적잖이 당황하였다. '깐풍기 엄청 비싼 음식 아닌가..? 대학생은 역시 다른 건가..'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받았다. 별다른 포장 박스나 그릇에 담기지 않고, 스티로폼 트레이 위에 깐풍기는 나의 마음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이내 잔을 채우고, 학과장의 건배사 이후 술을 마시고 깐풍기를 입에 넣었다.
치킨도 닭강정도 아닌데, 묘하게 달콤하면서 새콤한 닭고기 튀김 요리
깐풍기를 처음 먹은 내가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묘한 중독성에 계속해서 집어먹는 매력이 있는 음식이었다. 깐풍기에 정신이 팔린 나는 선배, 동기들과 친해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저 깐풍기만 집요하게 집어먹었다. 그렇게 나에게 대학 OT는 깐풍기라는 기억을 남겼다.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북깐의 진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웬만한 치킨 프랜차이즈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양은 건장한 성인 남성 2명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OT 때 깐풍기가 세팅이 되었던 이유도 그러한 이유였다. 단지 외지인이었던 나에게나 신선한 충격이었지. 청주에 뿌리를 둔 친구들은 OT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이내 섭섭했다고 한다. 더불어 깐풍기는 원래 저런 음식이 아니었다는 말에 2차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깐풍기 제조과정의 위생도 심각한 상황이었음에 청주 현지인들은 굳이 찾아 먹지 않는 음식이라는 말에 외면하려 했었다. 그렇지만 돈 없는 대학생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북깐이었고, 조금 더러운 위생상태는 건강한 내 위장이 해결해 주리라 믿으며 먹어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다양한 중식 요리들을 먹어보았다. 실제로 깐풍기는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를 매콤 새콤한 양념에 버무린 음식이다 라는 것도 비로소 최근에나 알게 되었다. 대학시절 먹었던 북깐보다 훨씬 맛있고, 훨씬 건강한 음식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깐풍기를 먹지 않게 된다. 돈 벌고, 배불러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지금의 깐풍기에는 이상하리 매력이 안 느껴진다.
설렘은 '나'를 중심을 하는 단어라면, 설레임은 '너'를 중심으로 하는 단어라고 믿는다. 일생동안 우리는 종종 설렘과 마주한다. 여행 전날의 설렘, 기대하던 택배가 도착할 때의 설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의 설렘. 설렘은 주체적이라 내가 온몸으로 뛰어나가 맞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설레임은 수동적이다.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깐풍기는 설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깐풍기는 설레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