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마음을 소멸시켜야 한다
스스로의 온도를 낮춰서 상대를 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아닌 내가 먼저 낮아진 온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속에서 내 안에 상처를 아물기도 새롭게 새겨가기도 한다.
물론, 아직은 상처가 아물어가는 느낌보다 새롭게 새겨지는 것이 더 선명해진다.
이전의 상처의 아픔을 잊기 위해 내 몸에 새로운 고통을 맞이하는 건 여간 씁슬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가끔 만화나 영화를 보면 무한 재생하는 빌런을 히어로들이 재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파괴하면서 빌런이 재생을 못하고 완전히 소멸되는 장면을 보곤 한다.
그 장면에 대입하여 나라는 영웅이 내 마음을 소멸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네게 아픔이었던 내가 완전히 소멸되는 순간까지 난 스스로를 파괴해갈 것이다.
언제 소멸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소멸에 가까워질수록 최소한 너는 아프지 않겠지.
동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 내가 겪어야 할 업보라 생각하면서 달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소멸이 되어버린다면 나도 너도 모두가 자유로워질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이 없이는 이 끊임없는 자학을 이행할 수 없고, 스스로가 버틸 힘이 없어진다.
애초에 너의 온도를 끓게 만들 필요가 없었고, 내가 빠르게 식는 것도 방법이다.
뜨겁고 따듯한 것만이 사람과 사람이 가져야 할 감정은 아니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온도로 서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편해지는 존재라 나는 확신한다.
오히려 너는 너의 것을 갉아먹는 나라는 피라냐가 그렇게 자멸해가는 과정이 고마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선택한 이 역설된 행동들이 너에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너를 위해 시작한 미비함이 그 끝에 가서는 나를 위한 찬란한 영광으로 돌아올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