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사진이 주는 감성
"여행을 가면 우리 와이프는 골목길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요. 왜 찍는지 모르겠어."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와 모처럼 점심식사를 함께하다가 논쟁이 벌어졌다.
"그걸 이해 못 한단 말이야?"
"그뿐인 줄 알아요? 남의 집 담벼락 사진도 찍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아니 느낌 있잖아. 그 갬성(!)을 이해 못 한다고?"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지금 광화문에서 종로로 향하는 길만 봐도 그렇다. 과거 '고갈비'로 유명했던 피맛골은 새로 정비되어 예전의 멋을 느끼기 힘들다. 사라진 골목길 위로 우뚝 솟아나는 최첨단 건물을 보면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최근 핫플로 떠오른 서울 용산에는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골목길이 있다. 19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백빈건널목이다.
좁은 골목길을 관통하는 기찻길 건널목인데, 기차나 지하철이 이곳을 통과할 때면 차단기가 내려가고 역무원 아저씨가 깃발을 흔들며 사람들을 통제한다. 차단기가 내려갈 때 들리는 '댕댕'하는 경고음까지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런 골목길은 앞으로도 계속 보존해야 한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정겨운 골목길을 잘 관리하지 않나. 부디 위정자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서울 도심의 골목길을 잘 보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일까. 난 유럽을 여행할 때면 골목길이 정겹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중세시대 건축물과 거리를 간직한 구시가지를 잘 보존하고 있다.
관광지나 맛집 또는 카페를 찾아가다 예쁜 골목길을 발견하면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게 된다.
특히 갑자기 만나는 한적한 골목길은 영화 세트장 같고 그 길을 홀로 걷노라면 중세시대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혼자 여행할 때였다.
구글맵을 켜고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한 사람 정도만 겨우 걸어갈 수 있는 굉장히 좁은 골목길을 만났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지만 대낮이어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걸어가는데 골목 반대편에서 구글맵 특유의 방향을 알리는 외국어 목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걸어왔다. 그리고 1~2초 후에 내 구글맵에서도 한국어로 '우회전'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큭'하며 웃었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냥 '구글맵'으로 대동단결한 느낌이랄까?
골목길이 좁아 거의 스치듯 서로를 지나칠 때 그 남자가 "Have a good day"라고 인사했다. 나 역시 같은 말로 화답해 줬다.
골목길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는 '골목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구경한 후 알바이신 지구로 이동해 산 니콜라스 전망대를 찾아갈 때였다. 친한 후배와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우리는 구불구불 좁은 알바이신 골목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때는 19년 전인 2006년. 그때는 지금처럼 구글맵이 없었고, 가이드북에 첨부된 지도나 현지 인포메이션 센터 또는 호텔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관광지를 찾아다닐 때였다.
지도를 이리보고 저리 봐도 도저히 골목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으로 꺾어도, 왼쪽으로 꺾어도 골목은 계속 이어졌다. 솔직히 우리가 서있는 지점이 지도의 어디쯤 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길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현지인은 물론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그렇게 많던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우리 두 사람만 그곳에 딱 떨어진 것처럼 고즈넉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을 한 바가지나 쏟았다. 슬슬 짜증을 넘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헤매기를 한참 우리는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 길을 꺾었고 드디어 골목 끄트머리에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 1대 정도 다니는 길이었다. 그 도로 건너편에서 길을 걸어가는 서양인 커플을 발견했다.
무조건 뛰어가 길을 물어봤더니 자기들도 전망대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정말 그들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올라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마시는 생수 한 모금과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관광지와 붙어 있는 유럽 도시의 골목길에는 여지없이 노천식당이나 카페, 바가 들어서 있다. 카페나 식당 내부는 한산하지만 밖에는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그만큼 유럽인들은 밖에서 식사하거나 커피 마시는 걸 몹시 좋아한다.
사실 좁은 골목길에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으면 걸어가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때가 있다. 거기다 담배까지 피워대면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다.
그래도 그 풍경이 골목길의 감성을 끌어올려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이 저녁이 되면 운치는 배가 된다. 돌길이 깔린 좁은 골목길에 노란색 가로등 불빛과 노천식당의 조명이 어우러지면 낭만도 이런 낭만이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유럽 도시마다 걸었던 골목길이 선명히 떠오른다. 때로는 으스스하고 때로는 시끄럽고 때로는 지저분하고 때로는 악취가 풍겼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저 아름다운 골목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