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투어리즘에 대하여
내가 유럽여행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할 때인 2000년대만 해도 유럽 유명 관광지에 입장할 때 줄을 선 적이 거의 없었다. 바티칸 대성당(이탈리아 로마)과 알람브라 궁전(스페인 그라나다)에 들어갈 때 줄을 선 기억이 있을 뿐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파리)도 바로 입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유명 관광도시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최근 2~3년 사이에는 줄을 서지 않으면 유명 관광지가 아닌 취급을 받을 정도로 줄 서서 기다리는 게 다반사다.
온라인으로 예약해도 종이 티켓으로 교환해야 해서 줄을 서고, 앞 시간대에 입장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뒤로 밀리다 보니 또 줄을 서는 식이다.
2006년 8월 찌는 듯한 여름에 스페인 몇 개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중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답게 관광객이 제일 많았다. 당시만 해도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성이 덜 된 상태여서 개인적으로 구엘공원이 더 인상 깊었다. 특히 구엘공원 내 테라스를 장식한 가우디 특유의 물결 모양 타일 벤치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도 일품이다.
2006년 당시에는 구엘공원을 편안하게 들어가서 공원 안을 여유롭게 구경하다가 구엘공원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테라스에 가서 사진을 실컷 찍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인 2019년에 언니, 동생과 갔을 때는 테라스 주변에 안전선이 둘러쳐져 있고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티켓에 적혀 있는 시간 안에 테라스에 들어가야 하는 걸로 바뀐 상태였다. 그걸 모르고 예전 생각만 했다가 하마터면 테라스에 못 들어갈 뻔했다.
이탈리아 로마도 마찬가지. 처음 로마를 여행한 해는 2003년. 당시에도 로마엔 관광객이 많아 트레비 분수에서는 사진 찍기 힘들 정도였지만 콜로세움에는 큰 어려움 없이 들어가서 내부를 관람했었다. 당연히 당시엔 온라인 예매가 없을 때여서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했는데도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2017년 혼자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들른 로마는 14년 전과는 천지차이였다.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콜로세움은 입장 줄이 엄청나서 내부 관람은 엄두도 안 났다. 바로 옆 포로 로마노도 마찬가지. 특히 사전예약을 하지 않고 갔던 나는 표 사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유럽 내 어떤 도시든 유명한 관광지라면 상황은 비슷하다. 관광명소뿐 아니라 웬만한 맛집은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길게 줄을 서야 하고 맛집이 아니더라도 관광지 근처 식당이나 카페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2010년대 후반부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 내 유명 관광지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네치아 주민들은 너무 많은 관광객 때문에 환경오염이 심각하고 임대료가 급등하는 등 주거환경이 악화됐다며 당국에 항의했다.
지난해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이 시위에 나섰고 관광객에게 물총으로 물을 뿌리며 "Tourists go home"을 외쳤다. 올해 6월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직원들이 관광객 과잉으로 근무 여건이 악화됐다며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에서는 숙박 시 1박당 1~10유로의 관광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베네치아는 숙박세 외에 추가로 5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바르셀로나도 숙박세 외에 도시세 명목으로 3.25유로를 추가로 받는다.
물론 현지 주민들의 입장도 십분 이해한다. 나 역시 내가 사는 곳에 관광객이 몰려 시끄럽고 교통이 혼잡하고 임대료가 상승한다면 당연히 불만을 가지리라. 관광객이 꼴도 보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모처럼 큰 마음먹고 돈을 모아 그 먼 곳까지 왔는데 현지인들이 적대감을 드러내며 돌아가라고 하면 너무 우울할 것 같다. 특히 그 도시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억울하지 않을까?
대부분 여행객들은 유튜브나 블로그, 카페 등에서 관련 영상과 글을 찾아보고 가이드북을 참고하며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후 그 도시에 간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실물을 보는 것만 못하다.
파리 에펠탑이 얼마나 큰지, 런던 빅 벤이 얼마나 높은지, 바르셀로나 가우디 건축물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로마 콜로세움이 얼마나 웅장한지, 프라하 카를교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만년설이 내려앉은 스위스 산들이 얼마나 멋진지,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소위 '실물 깡패' 앞에서 무장해제된 여행객들은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세(관광세)를 받는 도시가 늘어나고 그마저 인상되는 추세인 점은 유감이다. 가뜩이나 유럽의 높은 물가로 숙박비가 오르고 외식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도시세까지 내야 한다니. 파이어족이 되고 보니 그렇게 빠져나가는 돈이 아깝다. 그렇다고 여행을 안 다닐 수도 없고. 답이 없는 수학 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문제는 도시세를 부과해도 관광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도시세로 인프라라도 잘 구축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유명 건축물을 보수공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장실이라도 많이 지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