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
"사물함이 왜 안 열리지?"
그날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벨베데레 궁전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이 전시된 곳이어서 항상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이다. 동생과 나는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부 관람을 마쳤다.
예술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가방을 꺼내기 위해 사물함으로 향했다. 그런데 동생이 당황한 목소리로 문이 안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료인 줄 알았기 때문에 여는 방법을 잘 몰라서 문이 안 열리는 줄 알았다. 나는 두리번거리다 어떤 남자가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는 걸 발견하고 사물함을 어떻게 열었는지 물어보기 위해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막 "익스큐스미"를 외쳤는데 동생이 "언니, 이거 2유로를 넣여야 하나 봐"라고 말했다. 응? 유료라고?
당시 우리는 부다페스트를 거쳐 비엔나로 이동했는데 두 도시 모두 어디서든 신용카드로 결제가 돼서 굳이 현금을 인출하지 않았다. 우리가 여행하는 나라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체코였는데 세 나라의 화폐가 다 달랐다. 오스트리아는 유로를, 나머지 두 나라는 자국 화폐를 사용한다. 그래서 현금이 필요할 때 소액을 인출할 예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벨베데레 궁전 사물함은 2유로를 넣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현금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는 멘붕에 빠졌다. 분명 블로그 등에서 사물함이 무료라는 글을 봤는데 그 사이에 정책이 바뀐 모양이다. 그때 내가 사물함을 어떻게 열었는지 몰어보려고 했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뭔가를 건넸다. 받고 보니까 2유로짜리 동전이었다. 우리가 동전이 없어서 당황한 모습을 지켜봤는지 그걸 주곤 쿨하게 돌아섰다.
우리는 너무 놀라서 "땡큐"라는 단어를 2~3초 후에 내뱉었는데 그 남자는 이미 사물함 입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크게 "땡큐"를 외쳤지만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그가 건네준 2유로를 넣고 가방을 꺼내면서 우리가 얼마나 안도했는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졌는지 그는 모를 테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받은 친절에 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가 준 동전은 2유로짜리였지만 우리가 받은 감동은 2만 유로 못지않았다.
10년 전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때였다. 그때도 동생과 함께 여행 중이었는데 우리는 메트로(지하철) 티켓 10장을 묶어서 판매하는 '까르네' 교통권을 구입했다. 파리가 넓기 때문에 메트로 탈 일이 많아서 '까르네'를 한 장씩 사용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메트로를 타기 위해 티켓을 넣었는데 '삐'하는 경고음과 함께 통과가 안 되는 것이다. 한번 더 티켓을 넣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메트로 매표소 직원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잘 못하는 영어로 떠듬떠듬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 직원은 우리가 가진 티켓을 투입구에 한번 넣어보더니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그는 한번 더 뭐라 뭐라 하더니 사무실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메트로 게이트를 빠져나오던 한 남자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지갑을 들어가는 입구에 갖다 댄 후 가던 길을 가면서 슬쩍 우리를 돌아봤다. 그 지갑 안에는 교통카드가 들어있었던 듯 바로 게이트 문이 열렸다. 내가 잽싸게 들어가면서 "메르씨"를 외치자 그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버렸다.
파리 메트로는 출입 구조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들어갈 때는 티켓을 넣어야 하지만 나올 때는 자동으로 게이트가 열리는 구조여서 티켓이 없어도 된다.
"뭐야. 파리 남자들 왜 이렇게 츤데레야." 동생의 말 한마디에 와하하 웃으면서 또 한 번 파리가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유럽여행을 하면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2023년 가을에는 혼자 2주 동안 독일을 여행했는데 도시 간 이동 때마다 기차를 이용했었다. 독일의 기차는 연착이 잦고 플랫폼이 수시로 바뀌어 악명이 높은데 지금도 독일 기차에 대한 기억이 좋은 이유는 친절하게 큰 여행가방을 들어서 옮겨준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다. 2주 동안 내 힘으로 여행가방을 들고 기차를 타거나 내린 기억이 없을 정도로 주변의 남자들은 선뜻 '들어줄까?'라고 의견을 물어본 후 들어서 옮겨줬다.
런던에서는 카페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가 허겁지겁 다시 돌아갔더니 입구에 서서 내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던 직원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다시 찾으러 올 줄 알고 휴대폰을 들고 서있던 그는 "아이폰은 특히 조심해"라며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유럽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곳이든 친절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성격상 기분 나쁜 일은 빨리 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기분 나쁜 순간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누구든 낯선 곳에서 낯선 환경을 접하다 보면 실수하고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칠 때가 있다. 그때 선뜻 도와준 후 쿨하게 돌아서는 이들을 만나면 나도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결국은 세상을 조금씩 살기 좋게 만든다고 믿는다. 세상은 아무리 힘들어도 살 만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