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이 소환한 내 청춘일기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1990년, 대학 졸업 후 24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내게 서울은 화려한 도시였다. 그리고 춥고도 험한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지사에 입사했지만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과 한 달에 일주일은 꼬박 야근을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난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땐 젊었고 패기가 있었고 자신감도 넘쳤다.
충무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을 타고 상도동 자취방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때마침 지하철 1호선은 한강을 건너고 있었고 저녁과 밤의 경계에 선 시각, 한강은 형언하기 힘든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하철 출입문 옆에 기대선 채 한강을 바라보며 나는 다짐했다. 서른 살이 됐을 때 보란 듯이 성공해서 한강을 발아래에 두겠다고. 그때 내가 생각한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스물네 살 사회초년생은 서른 살이 되면 '성공'해서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은, 사회는, 세상은 춥고도 험한 곳인 줄 모르고.
이번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TV를 켰다. KBS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제목의 콘서트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우리는 조용필의 노래를 '떼창'으로 따라 부르며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울컥해서 눈물도 흘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카타르시스였다.
그것은 과거의 소환이었다. 청춘으로의 회귀였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음을. 가슴 뛰는 열정이 있었음을. 그리고 넘치는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 줬다. 가왕의 노래는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도 한 편의 시였다. 중년이 돼서 들으니 가사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가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1991년 발표한 '꿈'은 조용필이 작사·작곡한 노래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서울 드림'을 꿈꾸고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의 고된 삶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 이 노래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회초년생으로 춥고도 험한 곳에서 고된 삶을 살고 있던 내게는 위로와 같은 노래였다. 그러나 이후 신문기자로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이 곡을 잊고 살았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이 노래에 팔을 쓸어내리고 있다. 나를 소름 돋게 한 것은 지금의 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다. 나는 다시 명예퇴직이라는 미명 하에 차가운 거리로 내몰렸다. 여전히 나는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늪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다. 환한 조명이 나를 비출 때는 숲인 것 같았지만 조명이 꺼지니 세상은 늪으로 변했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나는 MZ세대에게 타도 대상이 된 '586세대'다. 나이가 50대이고, 80년대 학번이며, 60년대에 출생했다. 나는 1980년 광주를 겪었고 1987년 6월 항쟁을 체험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경험했다. 내가 대학생일 땐 인터넷도, 휴대폰도, AI도 없었다. 배낭여행이라는 단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청춘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의에 분노했고 억압에 맞섰으며 자유를 꿈꿨다.
1990년대 하이텔·천리안 등 PC통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됐을 때 우리 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위 '채팅'을 주고받았고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된 후에는 스타크래프트로 대변되는 온라인 게임과 MSN 등 PC 메신저로 소통했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향유한 세대다. 지금 MZ세대의 눈으로 보면 올드하고 고지식한 기성세대겠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정확히 40년 전인 1985년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통해 고독하고 외로운 청춘에 대해 노래했다. 내레이션과 노래가 적절하게 배합된 이 곡은 발표와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킬리만자로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내 청춘에 건배하게 만들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당연히 내 청춘은 끝이 났다. 하지만 중년이 된 나는 여전히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이제 60대를 향해 가지만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내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도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헤매는 느낌이다. 공자는 50세를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위대한 학자이니 그 나이에 하늘의 명을 깨달았을지 모르나 그보다 한참 하수인 나는 '부(不)지천명'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20대에 들었을 때도 깊이 공감했던 이 가사에 지금은 그보다 수만 배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바로 지금 내 모습을 묘사한 것 같아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알고 있다. 흰머리가 늘고 눈은 침침해지고 주름이 늘어나는 것을. 젊은 세대와 같은 속도로 일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주연자리를 물려준 사회라는 무대에서 단역이 아닌 조연이 되는 것을. 그래서 멋지게 나이 먹는 것을. 젊어본 적 있는 우리는 늙어본 적 없는 젊은 세대보다 경험치가 많다. 비록 로봇과 AI가 우리를 대신하겠지만 그래도 인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휴머니즘은 로봇이나 AI가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21세기가 간절히 우리를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