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 8

#8 굴러온 돌의 파괴력

by 직딩누아르

솔직히 이번 에피소드는 내 안에서도 꺼내기 힘든 기억이다.


아직도 용서가 되지 않아 몇 번을 쓰려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안에 켭켭이 쌓인 울분과 앙금의 덩어리를 조금이라도 털어내기 위해, 용기를 내본다.


예측 불가능한 외국인 대표의 감정 기복 아래, 회사는 매일이 전쟁터였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생활까지 흘깃거리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귀가 얇은 대표의 관심을 얻기 위한 음모와 이간질이 난무했다. 누군가는 고의로 징계 사유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불법 감사를 벌이며 권력을 지키려 했다. 그야말로 사내판 춘추전국시대였다.


이런 조직문화를 버티지 못한 재무 담당자들은 줄줄이 사표를 던졌다.

마지막 경영지원팀장은 그나마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너무 정직했다. 그는 외국인 대표에게 정면으로 이메일을 보내며 내부 부조리를 폭로했고, 일주일간의 ‘메일 투쟁’을 벌였다. 결과는 뻔했다. 대표는 법무법인을 동원해 온갖 협박과 압박으로 그를 사직하게 만들었다.


대표는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원하는 경영진은 이런 게 아니야”라며 새로운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전국의 헤드헌터들이 동원되었고, 마침내 ‘그’를 찾아냈다.


업계에서는 소문난 싸움꾼이자, ‘돌’ 중의 ‘굴러온 돌’이었다.

그의 등장은 실로 전설적이었다.


몇 달 만에 기존 질서를 모조리 부숴버리고 자신만의 왕국을 세웠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내부조사, 징계위원회, 소송 예고장이 날아왔다. 익명 게시판에 회사를 비판한 전 직원들은 내용증명과 명예훼손 협박을 받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악마를 보았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더 기가 막힌 건, 본인과 주니어 직원 간의 ‘플러팅 문자’ 사건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자신보다 몇 살 아래 직원에게 다소 친하게 지냈고, 사내에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자주 서성이고, 서로 아주 친근하게 지내면서 그들 주변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러나 과도한 웃음과 친밀함이 주변의 질투를 산 나머지 주변 인들과의 마찰음 생기기 시작했고, 애매한 시각에 애매한 플러팅의 메시지로 인해 사단이 났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지기도 아니고 큰일 만들기보다 오해를 풀고 가볍게 사과하고 매듭짓기도 전에, 그는 되려 주니어 직원을 명예훼손과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상대를 고소 접수하면서 판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쯤 되면 현실판 ‘정치 9단’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비슷한 일은 내게도 벌어졌다.

갑작스런 어느 날 이전에 내가 제기했던 사내 고충을 듣고, “나는 네 편이야”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억울했을 나의 사연을 읽었다며, 휴지를 건네며 “강해져야 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그를 믿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공감’은 치밀한 연극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곧 보고서가 되어 대표의 책상 위로 올라갔고, 그 보고서는 내 등에 깊은 칼로 꽂혔다.

그 후 그는 그와 친한 법무,노무 자문까지 받으며 나를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재배치시켰다. 그곳은 말 그대로 얼음 밟듯 조심해야 하는 시베리아였다.


솔직히 아직도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정작 더 미운 건 그 사람보다, 그 모든 모욕과 불합리를 참으며 버텼던 내 자신이었다.

나는 한때 기대했다. 회사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면서, 더 개방적이고 이해의 폭이 넓은 문화를 만들어가길. 나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함께 더 나은 조직을 세워가길 믿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나의 믿음을 배신했고, 회사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들을 낡은 부품처럼 취급했으며, 자신만이 새 시대의 주인공이라 믿었다. 그런 오만함과 교만함 속에서 회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무너져갔다. 그에게 기대했던 내 자신에게 더 화가 났었다.


이제는 그에게 쏟았던 분노를 내려놓고 싶다. 그를 미워하기보다, 그때의 나를 먼저 안아주고 싶다.
끝까지 버티고 견뎌낸 나에게 “넌 잘했다, 정말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시 다짐한다.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나를 잃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거짓된 권력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의 평화를 지켜내겠다고. 언젠가 이 모든 일이 그저 지난한 성장통이었노라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를 회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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