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쓰기
브런치, 여러모로 가슴 설레는 단어다. 오전의 임무를 완료한 느지막한, 아직 점심시간은 도래하지 않은 그 시간에 적당한 곳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나누는 간단하지만 화려한 플레이팅의 식사. 브런치가 상징하는 상황에 상상만 해도 진한 미소가 지어진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도 아마 그러한 연유에서 이름을 따왔으려나. 브런치 작가가 되기만 하면 진짜 ‘작가’가 된 듯한, 더 이상 엄마라는 호칭 외에 무언가 효용 있는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둘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던 2019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곰사랑 100일 글쓰기’를 신청하였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그 시간 동안 12일 제외한 88일 글쓰기를 완료한 후 수료증을 받았다. 같이 수업을 진행한 동료들이 한둘씩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는 동안 나도 한두 차례 작가 되기에 도전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아이는 태어났고 두 아이의 엄마와 이직한 남편의 아내 역할 수행에 시공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우연히 수원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글쓰기 강좌를 듣고 뜻있는 몇몇이 모여 ‘써야 쓴다’라는 소규모 글쓰기 모임이 만들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글이라는 것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던 브런치가 떠올랐다. 2022년 그러니까 무려 3년이 지나서야 재도전했고, 수락되어 대망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때 나는 드디어 작가가 된 것만 같은 거대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고대하고 기대하면 ‘작가’가 되었건만, 현실은 비루했다. 고작 8편의 글만 올린 채 개장 후 휴업상태인 가게마냥 문을 닫았다. 물론 완전히 글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지인들과의 소통을 위한 SNS나 소규모 비공개 계정에서 일기와도 같은 일상 기록이 전부였다. 글쓰기에는 여전히 목말라하지만 생각이 항상 행동을 앞질렀다. 애초에 내가 왜 글을 쓰고자 했는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썼던 자기소개를 찾아보았다.
잘 살고 있었습니다만,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이번 생은 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훌륭하고
아이들은 해맑고
저는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문득
저와 같은 여자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라진 언니들을 찾아내고
사라지고 있는 여인들을 부여잡고
다락에서, 부엌에서, 지하에서
구출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그저 그런 삶일지라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참으로 장엄하고 비장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를 구출하고자 하다니. 묻혀진 나와 그 외 사라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자기소개가 아닌가. 내가 뭐라고. 두 아이는커녕,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저런 포부를 내비치었을까. 그렇지만 한 스푼도 거짓말을 보태지 않은 진심이 아닌가.
앞으로 써나갈 글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종착지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서 기나긴 우주의 역사상 특별히 아쉽거나 이상한 것도 없지만, 현존하는 우리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살아가는 동안,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터무니없지만 단순한 바람이다.
‘그대가 진정으로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러니 뭐라도 해볼게요.’
#새해새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