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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Apr 20. 2022

눈물이 슬픔의 척도가 아니기에.

그만 울까. 계속 울까.


그저 약간의 휴머니즘을 가미한 티브이 광고에 눈물이 주룩 흘렀을 때였나. 친구 결혼식에 가서 오해받기  좋게 눈물을 계속 흘려 결국 빨개진 눈으로 단체사진을 찍을 때였나. 이리 와서 앉아보라는 엄마의 말에 이미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이던 어린 시절이었으려나.


나의 몸은 70퍼센트의 피가 아니라 눈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고여 방 전체가 물에 잠기는 상상도 해본다. 눈물샘을 지져서 막는 수술을 할까. 만약 그런 수술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한 번 시도해 볼까. 호르몬을 포함하여 각종 핑계들도 슬슬 지쳐갈 즈음 결국 눈물은 자기 연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나의 이 모든 눈물이 자기 연민이었다니. 나는 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구나.


누가 봐도 울어야 할 타이밍에 울지 않는 자들이 있다.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직장의 고충과 상사의 갈굼, 서러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조한 눈을 유지하는 자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현실에서 감정을 분리시켜 현명하게 행동하는 자들은 어떤 훈련을 통한 것일까. 세상의 온갖 슬픔에 과잉 노출된다면 눈물도 통제가 가능해지려나.


그러고 보니 요즘은 좀처럼 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울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어찌 된 일인가. 그 많던 울음은 어떻게 된 것일까. 덜 슬퍼진 것일까. 혹은 나의 자기 연민은 끝이 난 것일까. 두 아이가 나의 몸과 마음과 뇌를 흔들고 눈물을 뽑아내고 그러기를 이제 칠 년 차. 이제 나도 눈물이 좀 마른 것인가. 울만큼 울어서 더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오래전에 써놓은 일기를 보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덜 우울한 경향을 보였다. 우울이 삶의 기저에 잔잔하게 깔려 있는 와중에, 내가 어떤 활동을 줄기차게 혹은 활발하게 하는 경우 손쉽게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나는 육아 외에도 ‘꽤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 눈물이 많았던 나를 돌이켜 보니 눈물이 줄어든 나의 요즘이 생소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눈물의 빙하기를 당분간은 즐겨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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