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치인이다!'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위기를 잘 넘기셔야 합니다.

by 흑선백지

몇몇 기혼자들은 미혼자들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다!'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위기를 잘 넘기셔야 합니다.“


결혼 후 콩깍지가 벗겨진 이들은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확신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경계를 풀지 마라. 상대방이 이상적인 존재라는 환상을 버려라. 이는 결혼에 대한 짓궂은 농담이라고 웃고 넘어가기엔 꽤 범용성이 높다. 특히 민주주의를 논할 때 그렇다.


19세기 미국의 법조인 웬델 필립스는 1852년 매사추세츠 반노예제 협회 연설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경계심이다. 권력은 언제나 다수로부터 소수로 전용되려는 속성을 지닌다.”


그는 정치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민주 시민의 책무이며 시민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부패, 경제 불안, 사회 분열, 권위주의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을 경계하는 것에 대한 그의 강조는 오늘날에도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한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반쪽짜리 감시자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중도에서 한참 벗어난 광신도들은 온 오프라인에서 활개 친다. 상대 진영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날선 비난을 퍼붓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어느 진영을 집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민주 시민의 책무를 저버린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이들의 머릿속은 조건문으로 가득 차있다. 저 후보가 대통령만 되면, 저 정당만 없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는다. 그 결과 특정 정치인과 정당의 노예를 자처한다. 흔히 선거를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후자가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사고의 이점은 편리성이다. 무언가를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만능열쇠라고 믿는 순간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해결책에 대한 상상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도 존재했다. 신화와 종교가 일상생활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극작가들이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극 중 신을 등장시켰다. 신 역할을 하는 배우는 기중기 같은 기계를 통해 공중에서 내려왔는데 이로 인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직역하면 기계(machina)에서 나온 신(deus)이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극적 장치가 탄생했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무대에서의 위급하고 복잡한 상황은 빠르고 간편하게 해결되었고 덕분에 관객들은 이야기의 전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은 필연성과 개연성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외부의 개입으로 위기를 해소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해친다고 보았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정당한 수준의 위기에 도달했을 때만 신적 개입이 용인되어야 하며 이것이 남용될 경우 서사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현대의 관객들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개입에 더 엄격하다. 주인공이 어떻게 위기를 이겨내고 성장할지 궁금해하던 관객들은 느닷없이 만능열쇠를 등장시켜 갈등을 해소하는 작가를 실력이 부족하거나 게으르다고 본다.


민주 사회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은 정당과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의 임무는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경계며 이는 끝이 없는 지난한 여정이다. 지칠 때마다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골치 아픈 일들을 우리 대신 해결해 줄 기계에서 나온 신을 찾는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여기며 경계를 거둘 때마다 민주주의에는 위기가 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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