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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꼬마 Oct 07. 2023

시험보다 어려운 문제:연애

답의 절반은 내가 만들 수 있어서 감사

기개 좋게 출사표를 던졌건만 시험을 보고 나와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안 나올 것 같아서 계속 지나쳤던 내용들에서 시험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그게 실력이고 운이겠지.


한 달 반 뒤에야 시험결과가 나온다. 부분 점수들에서 심사위원들이 조금 더 후하게 준다면 합격도 가능할 것 같다. 오늘 시험은 그때 감사하기로 하자ㅋ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남자친구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다퉈서 서로 감정이 안 좋았는데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시험장까지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가 완전히 풀어진 것은 아니지만 화해의 시도에 대해서는 응하기로 했다. 화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풀어야 할 몫이다.


1년 반을 만나도 아직 서로를 다 모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은 여전하다. 얼마나 더 지나야 서로를 완전히 다 알 수 있을까! 평생에 걸쳐도 못 이룰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 말하고 듣고 이해를 구하고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명확히 요청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어서 감사하다.


전 남편과 전 애인들을 떠올려보면 적지 않은 기간을 함께 했어도 헤어질 때쯤이나 헤어지고 나서 내가 다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이 변했나 싶었지만 내가 안 보고 못 본 부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것들 중에는 좋은 부분도 있고 안 좋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그들을 다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40년을 엄마 아빠의 딸로 살아와도, 언니의 동생으로 언니를 알아와도 그들의 새로운 면들을 마주할 때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구나'싶다.


현 남자친구와는 지금까지의 지나간 연인들과의 관계보다 훨씬 깊고 친밀하지만(순전히 내 개인적인 성향에 기초한 평가다. 내 친구는 한 번도 '이 사람이다'싶은 남자를 못 만나봤다지만, 난 반대로 매번 '이 사람이다'싶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상대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속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

시험문제도,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한 날이다.

최선을 다해 알아가고 닿아보고 그려내 보련다. 시험문제도 사람의 마음도.


(이미 재시험 준비 중인 내 마음도 지금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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