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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꼬마 Oct 20. 2023

오아시스가 부러울쏘냐

샤워기 달고 쓰는 감사노트

샤워기를 하루 동안 쓰지 못해서 어제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은 채로 잠들었다.  

오늘 아침에 새벽배송으로 도착한 샤워기 달린 수전을 받고, 동네 어르신께 연락드리자 다시금 수전을 달아주시러 집에 오셨다.


한참을 씨름하시더니 결국 수전을 달아주셨다.  집에 있는 유기농 잼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건네자 부담스럽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원래는 냉장과 금형 쪽에서 일하셨던 기술자라고 하셨다. 우리 아빠랑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기질을 가지셨다. 전기 기술자인 아버지처럼 이 어르신도 포기가 없었다.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으면 집으로 가셔서 또 다른 장비를 가져오셔서는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내셨다.


부녀회장님 말씀으로는 이 동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이 기술자 어르신께서 손수 다 고쳐주신다고 하신다. 요즘 말로 재능기부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나서 저렇게 아무것도 안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매번 거절은 어려울 것 같은데... 흠..


아무튼 드디어 꼬질꼬질한 모습을 탈출했다.  좁아진 욕실이 불편하긴 하지만, 하루 동안 못 씻었던 터라 샤위기를 쓸 수 있는 것마저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차가워진 공기와 따가운 햇살이 가을을 진하게 드러내는 하루였다.  만족스러운 온라인 상담과 교육을 마치고 남자친구를 기다린다. 이만하면 괜찮은 불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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