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하고 짭조름한 활자의 맛

by 검은색달

어릴 때부터 난 아침잠이 없었다. 전날 아무리 피곤해도, 술을 많이 마셔도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 버릇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덕분에 여행을 가면 그곳의 이른 아침 풍경을 만끽하고, 동트기 전에 테니스코트에 도착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아침을 채워주는 일이 있다. 휴식보다는 힘들지만, 산책보다는 편안한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한 서른여섯 살 때, 누군가 내게 ‘6년간 네가 운영해야 돼’라고 얘기해 줬다면, 나는 아마 모임을 시작조차 못했을 거다. 다행히 내 주변에 시간여행자는 없었고, 6년간 매주 두 번씩 모임을 진행했다. 많은 책을 읽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와 독서는 위스키와 얼음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른 아침 침실에서 나와 밤 동안 차가워진 거실 공기를 밀어내고 소파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활자 속으로 들어가는건 내 하루의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시작이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찻잔의 온기 너머로, 문득 아주 오래된 기억의 냄새가 끼어든다. 사람들은 흔히 독서를 고상한 취미라 말하지만, 나에게 책은 취미 이전에 하나의 '생존'이자 '놀이'였다. 세련된 서점의 조명이나 도서관의 정갈한 정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독서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거기엔 언제나 코끝을 맴도는 알싸한 약 냄새와 혀끝을 찌르던 컵라면의 짠맛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약국을 운영하셨다.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의 방과 후가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학교가 끝나면 곧장 부모님의 일터로 향했다. 그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이자, 탁아소였다.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약국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 고요를 채우는 건 부모님의 손에 들린 책이었다. 엄하고 무뚝뚝하셨던 두 분은 별다른 대화 없이 각자의 책에 빠져 계시곤 했다. 어린 눈에 비친 그 모습은 꽤나 근사해 보였다, 그 견고한 침묵 속에 나도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 옆에 슬그머니 의자를 끌어다 놓고 책을 펼쳤다. 사실 책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살갑게 안아주거나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같은 행동을 통해 부족하게나마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것은 어린 내가 부모님에게 건네는 소심한 애정표현이자, 그들의 세계에 동참하고 싶은 작은 몸짓이었다..


그 시절 약국 조제실 뒤편, 작은 책장에 꽂힌 책들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인 <스칼렛>, 제목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평행우주>...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울창한 활자의 숲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은 눈 밖으로 쳐내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따금 부모님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황당함과 기특함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눈빛이었다.

그 관심이 좋아 나는 더 소란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그 시절의 독서는 ‘읽는 행위'라기보다 '머무는 행위’였다.

낡은 벽시계의 초침 소리, 창밖을 지나는 자동차 엔진 소리, 그리고 부모님과 내가 함께 만드는 종이 넘기는 소리. 그 평온한 소음 속에서 나는 책을 읽는 척하며 사실은 부모님의 곁을 읽고 있었다. 이것이 내 독서의 첫 번째 기원,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독서가 언제까지나 부모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연극이었던 건 아니다. 책이 주는 진짜 '맛'을 깨달은 건 어느 비 오는 날, 텅 빈 집에서였다.

부모님이 교회에 가시고 홀로 남은 집.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거실엔 냉장고 모터 소리만 웅웅 거리는 완벽한 자유의 시간. 조르바 보다 자유를 갈망했던 소년은 지체 없이 부엌 찬장에 숨겨둔 보물, 육개장 사발면을 꺼냈다. 가스 불 위에서 주전자가 기차 화통 같은 소리를 냈다. 반쯤 가려진 라면 뚜껑을 피해 펄펄 끓는 물을 붓는다. 물은 표시선보다 살짝 적게. 그때나 지금이나 싱거운 것보단 짠 것, 드래곤볼 보단 슬램덩크다.

라면이 익어가는 3분,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읽을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안방 책장에 꽂힌 <태백산맥>, <개미> 같은 묵직한 제목들 사이에서 내가 뽑아 든 건 이문열의 <삼국지> 1권이었다.

마루에 책을 던져놓고 컵라면 뚜껑을 뜯으면, 뜨거운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선풍기를 '미풍'으로 맞추고 배를 깔고 엎드려 꼬들꼬들한 면발을 한 입 가득 밀어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자극적인 짠맛과 함께 시선은 유비, 관우, 장비가 누비는 중원으로 향했다.

선풍기 바람은 적당히 서늘했고, 덜 익은 라면은 짜릿하게 맛있었으며, 난생처음 읽은 삼국지는 약국에서 읽던 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느낌.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책장을 넘기는 순간, 독서는 '머무는 곳'에서 놀이터가 되었다.


얼마 후 현관문이 열리며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나만의 짧은 해방은 끝이 났지만, 그 강렬한 기억은 내 몸에 각인되었다. 지금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근사한 여행지보다 컵라면 국물이 튀었던 그 마루 바닥이 먼저 생각난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맛있는 일인지 처음 알게 된 날이었으니까.


삼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서 시간은 맛있다. 대신 메뉴는 조금 바뀌었다. 짭짜름한 육개장 사발면 대신 짜릿한 싸구려 위스키 한 잔이, 덜덜거리는 선풍기 소리 대신 나른한 보사노바 선율이 흐른다. 비록 입맛도 변하고, 세월은 흘렀지만, 책장을 넘길 때 느끼는 그 고유의 맛은 여전하다.

가능하다면 나는 평생, 활자라는 안주를 씹으며 삶의 허기를 달래는 애주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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