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승강장의 '뫼르소'

병점행 급행열차를 보내고 깨달은 것들

by 검은색달


'지금 병점, 병점행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안전선 밖으로...'

2007년 한여름, 노량진역.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안내 방송은 파블로프의 종소리 같았다. 흐릿한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승강장에 있던 수많은 수험생 좀비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무리에 섞여 전력 질주했다. 그 귀하신 몸, '병점행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이상하게도 내가 타려고만 하면 꼭 구로행이나 인천행이 왔다. 그런 날 병점행을 눈앞에서 놓치는 건, 한 시간 줄 서서 기다린 맛집이 내 코앞에서 '재료 소진' 팻말을 거는 것과 맞먹는 고통이었다. 놓친 열차 꽁무니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게 욕을 내뱉고 나면, 곧이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늪에 빠진다. '아까 횡단보도 초록 불일 때 왜 안 뛰었지?' '커피는 왜 끝까지 다 마셔가지고...' '애초에 나는 왜 노량진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짜증과 자괴감은 여름 모기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손을 휘저어도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감정들. 그렇게 열차를 놓친 하루는 내게 '망친 하루'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량진 역에 들어서자 운 좋게도 병점행 열차의 팡파르가 울리고 있었다. 가방끈을 조여 매고 내달리려던 찰나, 뜬금없는 질문 하나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근데, 빨리 가서 뭐 하지?'


생각해 보니 집에 일찍 도착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할 것도 아니었고, 20분 늦는다고 집에 있는 밥이 쉬어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일부러 그 열차를 보내버렸다. 사람들로 꽉 찬 열차가 굉음을 내며 떠나갔고, 승강장엔 뜨거운 바람과 내가 남았다. 그곳에서 몇 대의 구로행 열차를 보내고 난 뒤 병점행 열차를 탔다. 늘 걸리던 시간만큼 걸려, 늘 걷던 길을 지나, 늘 향하던 집에 도착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집에 20분 늦게 도착했을 뿐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달렸던 걸까. 답은 간단했다.


'남들이 뛰니까.'


나는 늘 그랬다. 학창 시절엔 부모와 친구들을 따라갔고, 성인이 되어선 세상의 속도에 휩쓸렸다. 그런 나에게 '열차를 안 타겠다'는 결정은,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의 등 뒤가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른 선택이었다. 그 대가로 찜통 같은 승강장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했다. 그 땀방울은 온전히 내가 선택한 몫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변했다. 복수 전공, 취업, 이직… 내 인생의 굵직한 선택의 기준이 '타인'에서 '나'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40대가 된 어느 날,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지정도서로 선정되었다. 모임에서 쓸 발제문 제작을 위해 책을 다시 한번 정독하다가 무릎을 쳤다.

주인공 뫼르소는 세상의 제도와 관습을 거부한 채 자신의 선택이 만든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서늘한 태도는, 그날 노량진역 승강장에서 내가 내린 생뚱맞은 결단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남들이 다 타는 열차에 몸을 싣는 '효율'이라는 정답 대신, 찜통더위 속의 기다림이라는 오답을 스스로 선택한 순간, 나는 비로소 세상의 속도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시간 위에 오롯이 설 수 있었다. 사형 집행과 20분의 찜통더위라는 처분 사이에는 태양과 촛불만큼의 간극이 있겠지만, 그 본질만큼은 닮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지구와 보이저 2호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철학이, 사실은 땀 냄새나는 노량진역 승강장에도 있었다는 걸.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은 말했다.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이미 철학자다.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결정부터, 퇴사를 고민하는 중대한 선택까지. 우리가 내리는 모든 판단은 각자가 살아오며 쌓아온 '나만의 철학' 위에서 이루어진다.

마흔세 번째 겨울을 맞이했지만, 나의 철학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읽는다. 세상이 정해놓은 시간표대로 무작정 달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 오는 열차를 타지 않을 용기'를 내기 위해서. 남들이 다 뛰어가도 멈춰 서서 ‘나는 왜 뛰는가?’라고 질문하기 위해서.

물론 철학책이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깜깜한 인생길에서, 내가 지금 타려는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 비춰주는 작은 손전등 정도는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멈춰 서보자. 숨을 고르고 나에게 물어보자. "지금 들어오는 저 열차, 진짜 내가 타고 싶은 열차 맞아?" 혹시 남들이 다 타니까 휩쓸려 타는 거라면, 과감히 보내버려도 좋다. 다음 열차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열차는 당신을 집에 데려다 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