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버팀이라는 시간, 누림이라는 태도

by 흑진주

버팀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환경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버티면서 산다.

지켜야 할 자리가 있어서, 무너지지 않아야 해서, 혹은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이 환경을 시간이라는 형태로 통과해 간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우리가 묵묵히 지탱해야 하는 버팀의 시간이 된다.

얼마나 오래 그 시간을 버텨왔는지가 곧 우리의 삶을 증명하며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오해를 한다.

이 고단한 '버팀'의 시간이 끝나면 비로소 ‘누림’의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돈을 벌고 나면, 병이 나으면, 혹은 인생 2막이 시작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지금의 나'를 미루어둔다. 특히 이 시대 중년들은 그러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림은 버팀의 반대말이 아니다. 버티는 삶을 통과해야 얻어지는 보상이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소확행도 아니다.

누림은 버티고 있는 바로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버티느라 잔뜩 긴장해 있는 나 자신을 비로소 인정해 주고, 도망치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동력을 발견하는 고요한 힘이다.

결국 삶이란 ‘버팀’이라는 피할 수 없는 배경 위에 ‘누림’이라는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는 과정이다.

일상을 지탱하는 버팀의 시간이 삶의 근육을 만든다면, 그 시간을 통과해 내는 누림의 태도는 나를 잃지 않는 감각을 남긴다. 이 둘이 함께 공존할 때 삶은 비로소 그 의미를 찾는다.


이 글은 끝까지 버티라고 말하지도, 버티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지탱해 온 '버팀의 시간'들 속에 어떻게 '누림'이라는 태도를 심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버티며 살겠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태도로 그 시간을 통과해보고 싶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다독이며, 다시 시작하는 힘을 그 버팀의 한복판에서 찾아내기 위해서다.

Screenshot_20260103_183323_Instagram.jpg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사진촬영: 작가본인,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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