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하다 엄마 생각
딱 1년 전. 코로나 발생 건 수 그래프를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던 그때, 세상이 멈출 것만 같던 그때에 나의 세상 저 반대 편에서는 주식 잔치가 시작됐다. 그리고 12월 그 잔치가 끝나갈 때 나도 거기 한 발을 들였다. 결혼하고 외국에 나와 내 이름의 통장을 만들기까지 오 년쯤 걸렸고, 직장 생활을 이십 년 넘게 하면서도 통장 쪼개기가 귀찮다는 남편과 사는 내가 말이다.
이제는 내 피부 같은 스마트폰 회사의 주식을 몇 주 사는 것으로 주식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둔 자식 같은 돈이 사라졌다 붙었다 하는 심장이 쪼글쪼글 해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어느 인터넷 화면에서 스쳐 본 ‘주식에 넣은 돈은 찾을 때 까지는 사이버머니’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주식 하나를 추천받았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혈당 수치 측정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란다. ‘페니 스탁 penny stock’이라고, 아주 싼 데 유망하단다. 돌아서니 간간이 그 기업 뉴스가 눈에 들어왔고, 제품의 실효성이 증명될 만한 몇 가지 계약 건도 확인했다. 그리고 조금 돈을 넣었다. 아직 차트만 보면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나는 일단 몇 주를 사고 추이를 보기로 한 거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아침 싱가포르 STRAIT TIMES에 ‘애플이 올해 중에 실시간 혈당 모니터 기능이 있는 시계를 내놓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외신은 정치나 코로나 기사가 아니고서는 늦기도 하니 이미 인터넷에서는 흔한 내용이었다. 간밤의 흥분이 싹 가셨다.
‘의료 기기가 시계보다는 낫겠지, 나아야만 해!’라는 생각으로 검색에 들어갔다. 구글, 야후 파이낸스, 유튜브를 오가며 A4 1장 분량으로 경쟁 제품들의 장단점을 정리했다. 이미 유사한 제품들도 있는데, 그것들이 불편해서 DIY 제품을 만들어 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애플 시계는 나오면 나도 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애플은 대충 볼 기업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인 10명 중 1명이 당뇨를 앓는다는 것도.
그리고 우리 엄마도 당뇨가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엄마는 당뇨병 환자였다. 엄마는 매일 아침 손가락을 찔러 혈당 수치를 재어 메모지에 적었다. 남색 나일론 가방에 남자 손 만한 두툼한 기계 하나와 채혈지가 든 실린더가 하나 들었었다. 인슐린을 휴대하거나 맞지는 않았는데, 1형이었는지 2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에 엄마는 내가 대학생일 때 진단을 받았고, 나는 결혼 전까지 그러니까 10년 정도를 당뇨 엄마와 같이 살았다.
많은 제품 리뷰어들처럼 당뇨 환자들도 관련 제품 리뷰를 한다. 상품 개봉기부터, 가격 비교, 사용 후기까지 다른 카테고리와 다르지 않다. 가전 유투버가 아이패드 상자를 열듯 혈당 모니터 상자를 연다. 아이패드를 켜듯, 센서와 바늘판을 결합해 팔에 내리꽂는다. 모기 쫓는 패치 크기의 반구형 센서를 팔에 다는데 나는 무서워 볼 수가 없었다. 저것보다 더 싫은 일을 엄마는 매일 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그 센서를 팔이나 배에 붙이면 짧게는 열흘, 길게는 보름 정도 채혈 없이 혈당을 잴 수 있단다. 찌르지 않고 혈당을 재는 ‘Bloodless monitoring’ 은 당뇨병 관련 산업의 한 축이다. ‘She is diabetic’ 채널 언니의 뛸 듯이 쾌활한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 엄마도 하나 사주고 싶어 진다. 나보다 젊고 훨씬 건강해 보이는 유투버들이 여러 회사의 패치들을 양 쪽 팔에 붙이고 팔을 흔들어 보일 때는 힙한 신종 가전제품을 보는 것도 같다.
채혈만 문제가 아니다. 밥을 먹기 전후나 운동 전후의 실시간 모니터가 필요하고 위험 수치에 이르면 바로 조치가 필요하다. 이제는 모니터링 센서가 하루 종일 몸의 혈당을 재고 핸드폰이나 시계로 그 정보를 보낸단다. 잠자는 환자를 깨울 정도의 알람 기능도 있고, 데이터 공유 기능도 있어서 가족들이 만약의 경우 달려갈 수도 있다.
당뇨병 가전 시장의 한쪽 축은 인슐린 펌핑 기계다. 인슐린은 주사기로 직접 맞는 줄 알았는데, 이미 1970년대부터 자동 주입식 펌프가 나와있었다. 처음엔 배에 큰 주머니와 펌프를 붙이고 다녔다는데, 이제는 작고 가볍게의 경쟁은 지나갔을 정도로 진보했다. 유튜버들의 '펌프 감추는 법', '펌프 달기에 편한 위치' 등의 영상을 보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췄다. 엄마는 어떤 고민들을 했을까.
이제는 현재 혈당 수치나 건강 상태에 맞게 얼마나 정확한 양의 인슐린을 몸에 넣느냐의 경쟁이란다. 그것도 몸에 붙인 센서와 펌프가 대화를 나누고 자동으로 주사해주는 방식이 이미 나와있다. 사용자들이 최고의 조합을 만들기도 하고 기업들끼리 협업을 하면서 두 개의 시장이 하나로 연결되는 중이다. 아직은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바가 많은데, 이걸 제대로 만들어내는 회사가 이 싸움의 최종 위너가 되는 모양이다. 애플 와치나 갤럭시 와치에 혈당 모니터 기능이 들어간다는 건 아마 저 두 기계의 사이에서 어떤 컨트롤러 혹은 연결하는 역할이 되는 거겠다. 어떤 모양이 되었든 환자들이 바라는 게 이뤄지면 좋겠다.
엄마는 하루에 몇 번 안방에 들어가 손가락을 찔렀는지, 갑자기 등산을 다니기 시작한 건 당뇨 때문이었는지, 늘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았던 건 엄마 반찬이 따로 있어야 했던 탓인 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저 좋다는 기계들도 하나씩 기능이 바뀔 때마다 사주고 싶다. 엄마는 지금쯤이라면 칠십 대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저 작은 기계를 몸에 달고, 열쇠고리 같은 트랜스미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핸드폰 어플을 보라고 하면 뭐라고 했을까? ‘됐다’고 할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상상이 되질 않는다. 분명한 건 나랑 매일 싸워가며 기능을 배우느라 고생 좀 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때 내가 곁에 있어 주지 않아서, 들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것뿐이다.
직장생활도 했고 결혼도 했다. 아이도 키우며, 부모와 헤어져도 보았다. 마흔이 넘었다. 나는 내가 어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상이 있음을 주식을 시작하다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