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선이 55개, 세로선이 13개, 총 715개의 교차점이 있는 이 판 위에서 나는 졸 혹은 병(卒·兵)이다. 1년에 두 번, 기물의 대대적인 이동이 일어난다. 1월인 지금, 2026년 상반기 장기판이 완성되었는데, 나는 2년째 같은 줄 위에서 1년째 같은 기물을 옆에 두게 되었다.
인사철이 다가오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인사 예고가 뜨면, 실제 인사 발표의 시기와 결과를 두고 복도통신 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며 ‘XX가 이번에 승진한다더라’ ‘이번 주 금요일 인사 난다더라’라는 그럴듯한 말들이 변방의 내 귀에까지 들려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인사이동이라는 건 이 조직을 벗어날 때까지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선택했고,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도 내가 선택했으며(물론 최종 결정권은 내게 없었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생길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도 스스로 결정했다면, 지금은 장기판 위의 기물이 되어 내 의지는 없이 이리저리 놓이는 대로, 움직이라는 대로 보이지 않는 힘에 몸을 맡기고 자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 같아 나라는 존재가 지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변화를 기대했다. 작년의 환경이 나를 지옥 안 감옥으로 가두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가 달라진다면 감옥에서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下一個會更好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에서 루이팡역으로 이동 후 핑시선으로 갈아타 종착역까지 가면 징통에 도착한다. 징통은 핑시선 철도 마을 중 하나로, 옛 탄광 마을의 정취가 남아 있는 조용한 지역이다. 광산 일은 매우 위험해서 광부들은 늘 무사한 삶을 기원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무사히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빌어야 했었는데, 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나무 통에 소원을 적어 매달아 두었고, 이는 징통의 전통이 되어 곳곳에 사람들의 소원이 이렇게 가득하다.
2013년 로모를 들고 혼자 징통을 찾았다. 수많은 소원 중에서 하필 “下一個會更好”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더 나은 다음을 기대할 만큼 힘든 날들을 보냈었나 보다.
환경이 변하지 않았으니 나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의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장기 말이라며 상황을 탓하기보단, 내일은, 다음은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간절한 마음을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