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옥 여행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차안(此岸)은 ‘나고 죽고 하는 고통이 있는 이 세상’으로,
그리고 피안(彼岸)은 ‘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로 정의되어 있다.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한 걸까?
거창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고요한 마음의 바다를 향해 가고 싶은데 그것을 향한 길이 길고 굽어있어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괜찮을 것 같다가도 막상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괜찮지 않다.
감정이든 신체로든 티가 나서,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때부터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감정의 변화로 나 혼자만 느끼는 거라면 그나마 괜찮다. 적어도 겉으로 티는 안 나니까. 그런데 몸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점심시간이다.
용기를, 사실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게 무슨 용기까지 내야 하는 일이냐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먹고 다짐해야 하는 게 지금 내 상황이다.
사무실을 나와 지하로 내려가 줄을 서는 내내 사소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꽉 채웠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식판을 들고 식판을 채우고 자리에 앉았다.
제길, 하필 자리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급식대 바로 옆자리다.
이를 인식하자마자 파도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처럼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오늘도 망했다.
아직 한 숟갈도 뜨지 않았는데 팀원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차오른다.
어차피 팀원들은 나와 달리 사무실로 돌아가니 우는 걸 들키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팀장이 이름을 부른다.
그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온다.
하, 참는다고 참았는데 속수무책이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그치지 않는다.
결국 남은 점심시간, 팀장과 함께 걷는 내내 그냥 울었다.
이렇게 마음의 평안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다시 또 주저앉아버렸다.
출장을 가는 길이다.
팀원과 과장까지 함께 서울로 향하는 길.
이것저것 자료를 챙기느라 정신없어 불안약을 따로 챙겨 먹진 못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의 긴 일정이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출장지에서 나의 역할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니라서 별일 없겠지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삼십 분이나 더 가야 한다.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조수석 앞 유리를 통해 보이는 먼 산으로 시선을 끌어보지만, 차츰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지만 소용없다.
당장 내려서 걷고 싶은 마음뿐이다.
뭐라고 말하고 내려야 하는 걸까?
저는 우울과 불안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데요, 제가 오늘은 비상약을 복용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내려서 대중교통으로 목적지까지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될까?
최악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뇌 전체를 감싼다.
팔과 다리가 떨려오고,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눈물이 터지면 더 이상해진다.
거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붙잡는다.
간절한 눈으로 내비게이션만 바라본다.
지금 내가 있는 차 안이야 말로, 고통으로 가득한 차안(此岸)이다.
피안(彼岸)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이십 분, 십오 분, 오 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고, 주차된 차 밖으로 사람들이 나간다.
나의 이상함을 눈치챈 팀원이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쐴 것을 제안한다.
차 문을 열고 나가면 발을 딛기도 전에 넘어질 것 같아 차 안에 남는다.
뒷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고, 떨리는 팔과 다리를 의식하고 있던 몸에서 힘을 뺀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생각을 비운다.
주저앉은 길 위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고요한 마음의 바다,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