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을 붙이고,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고

나의 지옥 여행기

by 검은토끼

두 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진료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병원 소재지 지자체의 인사부서와 연계되었다는 안내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는 이기적인 안도감을 삼키고 등받이가 없는 원형 의자에 앉았다. 차마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손에 들려 있는 질문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점수가 높은 편이네요. 어떤 일 때문에 오게 되셨죠?"


떨궈진 시선 끝에 티슈가 보인다. 한 시간 사십 분이나 걸려서 온 이 병원에서 한 시간 이십 분 기다린 끝에 내 상황에 대해 이제 겨우 설명하려는데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온다. 아, 이 망할 눈물샘. 안과를 먼저 가봐야 했었나.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솔직하지 못했다.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나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비겁했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을까?

2주 치 약을 처방받았다. 다음 주에 종합 심리검사를 받은 후, 그다음 주에 나오게 될 결과를 보고 다시 약을 조절하기로 했다. 병원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였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나아진 거라고 봐도 될까? 가방 속 파우치에 약봉지를 숨겼다. 혹시나 엄마가 보고 놀랄까 봐. 언젠가 다가올 고해성사의 시간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지금은 미리 찾아본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버겁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지하철이 아닌 버스로만 가기로 했다. 멍한 눈으로는 낯선 바깥 풍경을 지나치고 반쯤 연 귀로는 라디오 진행자와 게스트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머리로는 심리검사를 언제 받을 건지, 약을 먹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계속 고민한다. 아프면 검사를 하는 게 당연하고 약을 먹는 게 당연한데 뭘 또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다. 2주 뒤엔 일본에 가야 한다. 출장을 앞두고 약을 먹어도 되는 건지, 심리검사를 꼭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약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는 두려움과, 망할 놈의 회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그깟 출장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 마음이 혼재한다.



우울과 불안, 두 개의 라벨을 붙인 나는 내 좁은 방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는다. 엄마가 꿈속에서 봤다던 하얀 별은 지고, 까만 하늘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