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의 레시피

우린 모두 제각각이 삶을 끓이고 있다. 때로는 짜게, 때로는 싱겁게

by Roselle

수년 만에 돌아온 황금연휴.

몇 년 전 '연차 하루만 내면 열흘을 쉴 수 있다'SNS를 도배했던 2025년 추석, 먼 미래 같던 그날이 금세 다가왔다.

기특하게 개천절과 한글날 사이에 들어앉은 덕분에, 더운 여름에 미뤄뒀던 여행을 떠나거나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들떠있다.

온 가족이 갖은 핑계를 대며 땅끝마을 부모님 찾아뵙기를 피하던 그간과 달리, 이번 명절엔 대부분의 가족들이 모였다.

덕분에 90을 넘긴 노부부는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로 입맛을 찾았다.


모든 게 간소화된 요즘, 다 같이 모여 산적꼬지를 꿰거나 기름 냄새 풍기며 전을 부치는 풍경은 없어진 지 오래.

그저 마트용 갈비찜과 잡채 정도의 밥상, 국 한 그릇도 없는 조촐한 밥상이지만,

찬장을 뒤져 짝도 안 맞는 수저를 꺼내 들고 다리를 구겨 앉으며 불편하게 밥을 먹는 모습만으로도 배가 부른 밥상이다.

번잡한 요리 없이 선택한 건 자연 그대로의 맛.

갖은양념 더한 명절음식을 대신해 살이 오른 제철 대하, 집 나간 며느리를 부르는 가을 전어, 이 시기에 구하기 힘든 바위굴까지.

땅끝마을답게 바다의 맛으로 밥상을 대신했다.


숯불을 피우고 고소한 연기 사이로 활활 타지도 꺼지지도 않게 달아오르는 불씨를 가만히 보며 생각한다.

이 순간은 행복일까, 외면일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였지만,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보단 '의무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같았다.

누군가는 귀찮은 듯, 누군가는 어색한 듯, 웃음 뒤에 서로의 거리감이 묻어 있었다.

가족은 여전히 가까운 존재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멀어진 타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안은 꽤나 보수적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짙었고, 딸은 출가외인이었으며, 며느리들에겐 여성의 희생이 당연했다.

예체능은 취미일 뿐 전공일 수 없었고, 전문대나 재수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전문직이나 대기업만이 인정받았고, 대학생 때 알바한다고 하면 그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타라는 이야기만이 난무했다.

그런 사상에 비해 아이러니하게도 외벌이 하는 부부도 없고, 남편이 아내보다 요리를 잘하기도 한다.

그런 집안에서 서비스업, 요식업, 광고업에 종사하는 우리 남매는 늘 어른들에게 특이한 존재였다.

"돈은 좀 버냐?"라는 물음엔 늘 묘한 뉘앙스가 있었다.

그건 진심 어린 걱정이기보다는, 기준에서 벗어난 우리에 대한 조용한 무시였다.

그래도 알고 있다.

그저 그들은 역시 틀 속에 갇혀 살아온 사람들,

세상의 기준을 내면화한 채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재단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명절날의 대화는 역시나 클래식했다.

새내기 대학생은 장학금 여부로 잔소리를 듣고, 30대를 넘어선 이들은 짝이 없다는 자체만으로 걱정과 한탄의 대상이 된다.

3년 간 공시 준비를 하다 취업 중인 사촌동생은 근심을 한가득이고 왔고, 얼굴도 비추지 않는 대기업 아들내미의 연봉이야기가 오가며 저녁 시간을 채웠다.

누군가의 자랑에 박수를 보내고 누군가의 근심은 유머가 되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들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걸.


주재원으로 10년 넘게 외국 생활을 지낸 다국어 능력자는 50대가 되어 쫓겨나듯 퇴직했고, 마을버스를 몰며 두 자식의 학비를 벌고 있다.

내일모레 60을 바라보는 평범한 교직원은 화물차를 살까 개인택시를 살까 고민 중이다.

대기업 자식의 성과급을 자랑하는 목소리 뒤에는, 시장에서 뒷바라지하느라 등도 못 대고 자는 고통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은 언제가 마지막일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조금씩 연명한다.

버티는 게 전부가 되어버린 삶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예민해지고, 조금씩 각박해진다.

누구도 여유롭지 않기에, 서로를 다정하게 대할 힘조차 없다.


유쾌함이 유전인 듯, 농담과 드립으로 앞마당엔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웃음 속에 고통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건 진짜 웃음이라기보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기 위한 하루짜리 휴전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될 현실의 무게,

부모라는 이유로 지붕이, 기둥이, 울타리가 되어야 할 매일의 삶 속에서

오늘 하루쯤은 자식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자식으로서 찾아온 부모님은 몇 개월 만에 더 야위어만 갔다.

삶의 마무리를 그려내고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그들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가족들을 보며 종종 복잡한 마음이 든다.

우리 가족은 다들 좋은 사람이 되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타인을 배려할 여유도, 서로를 챙길 마음의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좋은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채,

그저 늙어버린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할 수만도 없다.

그들의 무심함은 냉정이 아니라 생존의 결과였고,

그들의 이기심은 살아남기 위해 무뎌진 감정의 부스럼인지도 모른다.


삶은 어쩌면 '괜찮은 척'이라는 조미료를 조금씩 섞어가며 버텨내는 요리인지도 모른다.

다들 각자의 불 앞에서 타지 않게, 덜 익지 않게,

자신의 하루를 익혀내고 있다.

그렇게 완성된 밥상 앞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때로는 외면하며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부모로, 누군가의 자식으로,

그렇게 세상은 계속 식탁을 이어간다.


삶의 레시피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서로의 식탁에 잠시라도 앉아 그 '괜찮은 척'의 간을 알아주는 사람.

그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생각보다 덜 쓸지도 모른다.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m.newyorkilbo.com/4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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