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을 착각하는 방식

세잎과 네잎 사이

by Roselle

네잎클로버를 찾던 시간


'행운', 'Lucky'를 대명하는 수단이 있다, 네잎클로버.

어릴 적 집 앞 산책길이나 공원에 나가면, 우린 꼭 그것을 찾곤 했다.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헤집기도 하고, 엇비슷해 보이는 투박한 토끼풀을 잔뜩 뽑아와 이내 실망하기도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듯, 전 세계 여행지에서는 네잎클로버를 투명히 코팅하여 책갈피처럼 팔고 있는 노점상을 만나볼 수도 있다.

찾기가 쉽지 않은 풀인만큼, 네잎클로버는 행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네잎이 되지 못한 대부분의 세잎클로버는 행운이 아닌 '행복'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세잎클로버 사이에 하나쯤 섞여 있을 것 같은 모양을 계속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때의 기분은 이상하게 또렷하다.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괜히 뭔가를 이뤄낸 것 같은 기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들여다보면서 괜히 더 조심하게 되고, 잃어버릴까 봐 몇 번이나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금씩 옅어지고, 어느 순간엔 그냥 ‘네잎클로버 하나 주웠네’ 정도로 남는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아, 지금은 기분이 좋다.”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가장 순수하게 느꼈던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흔하다는 건, 곧 당연하다는 뜻이고 당연하다는 건, 결국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클로버가 속한 포커카드의 네 개의 슈트가 떠오른다. 하트(♡), 스페이드(♤), 다이아(◇), 그리고 클로버(♧). 단순한 도형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슈트는 우리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하트는 감정과 애정, 스페이드는 지혜와 통찰, 다이아는 물질과 성취, 그리고 클로버는 성장과 삶의 동력을 뜻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클로버는 땅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 누구나 밟고 지나가는 잔디밭 한편, 늘 그 자리에 깔려 있는 풀. 높은 곳에 있거나 숨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걸어 다니는 땅 가까이 평범한 일상 속에 자리한다. 그렇게 알고 보면, 세잎클로버가 '행복'을 상징한다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행복이란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자주 인식되지 않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행복을 길게 만들려고 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명료하게 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 ‘행복한 사람’, ‘행복한 상태’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행복을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지속될 수 있는 상태로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그것들은 대체로 짧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고 있을 때,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예상보다 잘 풀렸을 때처럼, 그 감정들은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형태로 존재한다.

행복은 순간인데 사람들은 그걸 유지하고 싶어서 행복을 상태로 생각한다.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던 그 짧은 감정처럼, 행복은 애초에 오래 머무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계속 확인하려 할까


행복을 상태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게 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무엇이 부족한 걸까.

이 질문은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원래 측정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닌데, 우리는 그것을 기준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기준이 생기는 순간 지금의 상태는 늘 부족해진다.

조금 더 나아져야 할 것 같고,
조금 더 가져야 할 것 같고,
조금 더 채워야 할 것 같아진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금이 아닌 다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가끔은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가 정말 실체를 가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에게 행복은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기쁨이나 즐거움, 만족이나 안정감 같은 감정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묶어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려 하면 어딘가 어색해진다.

반대로 불행은 훨씬 분명하다. 상실감, 두려움, 외로움처럼 무너지는 감정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행복은 그 반대편에 있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흐릿하게 느껴진다. 마치 안개처럼 분명히 스쳐 지나갔던 것 같은데, 붙잡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행복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종종 간절함과 불안이 함께 붙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현재는 준비 단계가 되어버린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막연히 쫓느라, '지금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언젠가'를 위해 현재를 소모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잎의 반복, 네잎의 순간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힘 같은 것. 그저 일상이라는 땅에 가득 깔려 있는, 기대하지 않아도 있는, 잃어버려도 금방 다시 나타나는 것.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것.

행복은 네잎클로버처럼 우연히 발견되는 번쩍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잎클로버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에 더 가깝다. 우리는 자주 네잎을 찾느라 바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이미 세잎 위에 서 있다.


이미 우리의 삶의 식탁 위에는 충분한 것들이 놓여 있다. 다만 그것들이 너무 익숙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것을 더 가져오는 일보다, 이미 앞에 놓인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기대보다 괜찮고, 어떤 날은 생각보다 아쉬운 채로 지나간다. 그 사이에서 가끔씩 아주 짧게 스쳐가는 순간들이 있다.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던 그때처럼,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순간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식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행복을 오래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알아보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붙잡으려 할수록 흐릿해지던 감정이, 오히려 흘려보낼 때 더 또렷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가끔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 아닐까 싶다.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분명히 좋았던 순간 하나,
그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newyorkilbo.com/4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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