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비용이 되는 순간들
오랜만에 행사쟁이로서 감각이 살아났다. 대학원 원우회 임원을 맡아 신입생 입학식 겸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다. 기획부터 운영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대야 하는 일이었다.
원우회라고 하면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봉사에 가깝다. 다만, 우리에겐 ‘봉사장학금’이라는 이름의 아주 소소한 지원이 있다. 물론 등록금에 비하면 3% 정도 되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이 의미하는 건 명확하다. “너희가 하는 일을 학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라는 표시.
그리고 나는 이런 표시가 붙는 순간, 일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가 학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인이기도 하니까. 맡은 일에 대해 최소한의 프로다움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7년 전 광고대행사 AE로 시작해 프로모션 기획 PD로만 3년. 그간 해왔던 기업 행사나 국가 기념식처럼 큰 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었다. 대학원이라는 공간이 보여줄 수 있는 첫인상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이 학교의 첫날이 되고,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의 첫 기억으로 남을 터. 그런 자리에서 불편함은 덜고 즐거움을 더하도록, 최대한 매끄럽게 만들고 싶었다.
행사라는 건 늘 그렇다.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한다. 음향이 삑사리가 난 것, 영상이 깨진 것, 진행이 늦어진 것. 좌석 안내가 조금만 헷갈려도 “준비한 거 맞아”가 된다. 사실 완벽한 행사란 없다. ‘완벽하게 보이도록’ 수십 가지의 작은 불완전함을 숨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숨김은 늘 누군가의 손에서 나온다. 누군가의 체크리스트, 누군가의 밤샘 작업, 누군가의 급하게 뛰는 발걸음.
그래서 행사는 늘 같은 결론으로 돌아온다. 행사에서 제일 어려운 건 기획이 아니다. 사람이다. 규정과 절차가 있고, 의견이 있으면 불만도 있고, 요청도 있고 사정도 있다. 누구는 원래 그렇게 해왔다고 하고, 누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며, 누구는 자기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늘 마지막엔 이 말이 등장한다.
“요즘 너무 바빠서요.”
특수대학원생으로서 우리 모두 각자의 본업이 있다.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보다 바쁘게 살아가고, 청춘의 삶을 꾸려가며 다채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누구나 바쁘다. 그건 전제다. 그러나 바쁨이 같아도 결과는 늘 다르다.
바쁜 와중에도 일을 해내기도 하고, 바쁨을 이유로 늘 빠져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가장 힘든 구간을 남겨둔 채, 보여지는 역할만을 챙긴다. 마치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자리인 것처럼. 행사 직전이 되어서야 돋보일 수 있는 역할에만 신경을 쓰고, 이미 누군가가 해놓은 바닥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만 챙긴다.
어딘가 익숙한 감각. 이건 대학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면 어디든, 늘 반복되는 장면이다.
학부 시절 공공기관 인턴으로 시작해 직장 생활 10년 차. 여러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바는, 조직이 얼마나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일이 굴러가는 방식은 놀랍도록 단순하다는 사실이었다.
일은 하는 사람만 한다.
인력은 숫자로 분배되지만, 일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해내는 사람’에게 몰린다. 한 번 맡기면 끝까지 챙기는 사람, 누락이 생기면 메우는 사람, 문제가 터지면 해결책을 찾는 사람, 마감이 다가오면 남들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느 팀에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체로 늘 바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바쁨은 ‘바쁜 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이 몰리는 사람은 바쁘지만 일을 한다. 반면 일을 미루면서 바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문제는 후자가 종종 더 눈에 띈다는 게 있다.
꽤 오랫동안 비교적 ‘어린’ 나이였다. 직급과 경력에 비해 어리다는 평가가 따랐고, 동방예의지국인 한국 사회에서는 메리트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원래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보다 결과로 증명하는 게 쉬울 것 같았고, 그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됐지’에서 멈추지 않으려 했고, 누군가가 해야 하면 내가 먼저 했다. 하지만 시간이 내게 알려준 이치는 결코 친절하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나 임원 중에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보다 일을 티 내면서 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야근을 덜 하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끝내는 사람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데 평가의 언어는 이상하게도 종종 이렇게 움직인다.
“저 친구는 진짜 열심히 해.” “저 친구는 늘 바빠 보여.” “저 친구는 항상 늦게까지 고생하더라.”
그 말들이 가끔은 ‘성과’가 아니라 ‘소란’에서 나온다는 걸, 나는 너무 많이 봤다.
묘하게도 “나 너무 힘들어”라는 말은 사람들의 동정을 얻는다. 반면 조용히 해낸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 사람은 결과보다 과정에 감동하기도 하고, 성과보다 태도에 반응하기도 하며, 효율보다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문제는 그 감동이 진짜 고생이 아니라 고생을 연출하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나는 ‘바쁘다’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듣게 됐다.
조직은 늘 바쁜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바쁨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바쁜 와중에도 답을 하는 사람이 있고, 바쁜 와중에도 최소한의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제 그 차이가 시간의 양이 아니라 태도의 방향에서 나온다는 걸 안다.
누구는 책임을 향해 바쁘고, 누구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바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늘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일은 하는 사람에게 몰리고, 그 사람은 더 잘하게 되고, 그래서 또 맡게 되고, 결국엔 소진된다. 반면 하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편해지고, 그 편안함이 마치 당연한 권리처럼 굳어진다.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되면, 조직은 ‘무능한 사람’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니라 ‘회피가 허용되는 분위기’ 때문에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책임감을 성실함으로만 부르지 않기로 했다. 성실함은 개인의 미덕이지만, 책임감은 관계의 예의에 더 가깝다. 내가 빠진 자리를 누가 메우게 되는지 아는 것. 내가 미룬 일이 누구의 시간을 갉아먹는지 아는 것. 그걸 알면서도 반복한다면,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책임감은 거창한 말이 아니다. ‘내가 맡은 일을 내가 끝낸다’라는 단순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무너질 때 남은 사람들은 일을 하는 동시에 공백을 감당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책임감은 미덕이 아니라 비용이 된다.
여기서 더 아이러니한 건, 책임감 없는 사람이 꼭 무례한 말투를 쓰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들은 정중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정을 설명하며 바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로 상황을 ‘관리’한다.
무례함은 말투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누군가의 시간을 당연하게 쓰는 것, 누군가의 노동을 배경처럼 깔아두는 것, 그리고 자신이 빠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대신 무너져도, 크게 마음 아파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무례다.
그리고 더 비겁한 건, 그 무례함이 대개 ‘몰라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괜찮아서’의 얼굴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결국 누군가가 해낼 걸 알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결국 모든 것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힘’이다. 조용히 해내기만 하는 사람은 오래갈 수 있어도 결국 소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구분을 흐리지 않게 만드는 사람, 그게 프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일도 결국 하나의 식탁 같다. 각자 맡은 음식이 있고, 각자 준비해야 할 몫이 있다. 누군가는 칼질을 하고, 누군가는 불을 보고, 누군가는 상을 차린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계속 손을 놓는다면, 다른 사람의 식탁은 점점 엉망이 된다. 누군가는 자기 몫까지 요리하다가 끝내 지치고, 누군가는 늘 차려진 밥만 먹는 사람이 된다.
조직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도 정확히 이렇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늘 사정이 있고, 일을 하는 사람은 늘 대신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대신하는 사람이 당연해진다.
나는 그 당연함이 무섭다. 왜냐하면 그건 결국, 누군가의 성실함을 재료로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간과 집중력과 책임감을, 아무렇지 않게 소모하는 방식.
그래서 나는 내 삶의 레시피에 하나를 적어두기로 했다.
책임감은 성실함이 아니라 예의다.
내가 빠진 자리를 누가 메우게 되는지 아는 것.
내가 미룬 일이 누구의 시간을 갉아먹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최소한의 몫은 끝까지 해내는 것.
예의 없는 식탁에서는, 어떤 음식도 오래 따뜻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식탁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은, 결국 맛을 잃는다.
어떤 조직에 있든, 어떤 감투를 쓰든, 그 맛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남기로 한다.
직함이 아니라 태도로 기억되는 사람으로.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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