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어른들의 식탁

어른의 되는 레시피

by Roselle

누군가가 차려 준 첫 식탁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군가가 먹이를 먹여줘야만 살아남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울음을 멈추고, 한시라도 눈을 떼면 제 머리카락에 질식하거나 베란다 난간의 틈새로 빠질 수도 있다.

엄마가 떠먹여 주는 밥을 먹고, 아빠가 씻겨줘야 세균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이라는 식탁에 처음 앉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도 정해져 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생각해 보면 사랑과 감사, 존경 같은 감정은 우리가 처음부터 알고 태어나는 감정이라기보다,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 속에 함께 들어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유치원에 가고, 초등교육을 6년 받고, 중등교육을 6년 더 받고서야 성인이 된다.

나는 웅변학원을 2년, 유치원을 1년, 초·중등교육을 12년, 그리고 고등교육기관에 6년째 다니고 있다.

그동안 내가 아이였을 때, 청소년이었을 때, 청년으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어른’을 마주했을까.


동화책과 위인전 사이에서 배우는 것들


어릴 때 우리는 그림책, 동화책, 그리고 위인전의 순서로 책을 접한다.

그림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배우고, 그림과 글을 함께 보며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동화책은 대개 권선징악의 구조를 가진다. 착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세상은 그 시절만큼은 단순하다.

그 시기를 지나 학생이 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위인전’을 읽는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광개토대왕, 백범 김구 같은 역사적 인물들. 이미 평가가 끝난 사람들, 이미 완성된 삶들이다. 요즘의 위인전은 조금 신세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역사 속으로 멀리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 살아가는 누군가가, 혹은 어쩌면 내가 후대의 위인이 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닐 테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에도 딱히 존경하는 위인이나 롤모델이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공주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서양 위주의 동화가 많아서 그런가. 죄다 하얗고 눈 크고 마르고 길쭉한 공주들만 나오는 동화나 영화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다. TV 시청에도 별로 취미가 없어서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었고, 롤모델도 없었다.


그저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존경’이라는 감정을 가장 또렷하게 느꼈던 대상은 부모님뿐이었던 것 같다.


존경을 배우는 계절


우리나라 국공립학교는 보통 5년마다 학교를 옮긴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대체로 젊은 편이었고, 중학교는 사립이라 젊은 선생보다 지긋한 선생들이 많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선생’이라는 느낌은 조금 희미해졌다.

학생은 입시로 평가되고, 학교는 실적으로 평가되는 곳이었다. 얼마나 많은 학생을 SKY에 보내는지 옆 학교와 경쟁하기 바빴다. 인서울권을 벗어나는 절반 넘는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성적표 한 장을 가지고 통계 프로그램을 돌려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꽃이 만개한 5월이 되면, 전국은 조금 들뜬다. 어린이날이 지나고, 어버이날이 오고, 일주일 뒤에는 스승의 날이 온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핑킹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옷핀을 달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적었다. 조금 더 컸을 땐 주름종이로 나름 입체적인 카네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빨간 카네이션은 사랑과 존경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존경해야 하는 존재’로 배운다. 존경이라는 감정 역시 어쩌면 오래된 교육의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떨까.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


아버지가 서운할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책임지고 기르고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자식을 향한 아가페적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부모님께 감사한 이유는 당연히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얻은 교훈, 내가 배운 이치가 귀하고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건 부모가 있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이 그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들을 사랑한다.


딸을 가진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화를 냈지만, 정작 우리 아버지는 공감했다.


나이와 어른 사이의 온도


사회인으로 10년, 사람으로 30년을 살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리자니 선뜻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전 동문회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는 이유로 만든 단체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편을 나누고 있었다.

동문회를 위해 수년간 애써온 사람도 있고, 감투를 쓰겠다고 사람들을 갈라놓는 사람도 있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그 소문을 믿고 힘을 보태는 사람, 그 사이에서 억울해지는 사람, 모든 사정을 알지만 침묵하는 사람.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이상의 선배들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텐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 꼭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일 필요도 없겠구나.’

그러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10년 전, 내가 적어 두었던 생각


10년 전, 에세이에 빠져 살던 시절 출판사 이벤트 응모를 부지런히 참여할 때가 있었다. 그때 위즈덤하우스라는 출판사의 신작 이벤트에 당첨돼서 책을 박스채 받은 적이 있다.


“어른의 것은 ㅇㅇㅇ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 내 답변은 이랬다.


어릴 적 나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자존심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고 다른 이들도 그에 동의하기를 바랐다.

서로 다른 생각이 있다면 나의 생각을 강요하기도 했다. 세상은 복잡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세상을 바라볼 땐 꽤나 단편적이었다.

어떤 일에 대한 나의 판단은 나의 배움에 의한 것이었다.

어떤 이를 향한 나의 평가도 나의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가끔 동네 골목 횡단보도 앞에서 콩나물이나 시금치를 파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 앞을 지나가며 나는 '왜 저것들만 팔까? 이왕 나물 파는 거 여러 가지를 팔면 더 돈이 되지 않나?'라고만 생각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정작 그 아르바이트의 시간에 쫓겨 학교 공부에 소홀해진다는 뉴스를 보면 멍청하다 생각했다.

"그 돈 몇 푼 번다고. 그냥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 무엇이 우선인지를 모르네."


시간이 지나고 대학을 가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너무나 당연히 내가 잘해왔다 생각했을 때 내 뒤엔 부모님이 계셨고, 나의 노력과 나의 성과라고만 생각해 왔던 일의 뒤엔 부모님의 피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정말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물론 노력할수록 성과도 올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엔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포기'라는 말로 회피했을 뿐, '할 수 없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세상에 적응해갈수록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어. 이만큼 해낸 것도 잘한 거야."

내가 나의 상황과 환경을 이유삼아 변명하면서, 그때 그 할머니가 왜 콩나물밖에 팔 수가 없었는지, 한창 공부할 때 그 시간에 왜 그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때의 그 상황이 어떤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갈수록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인생만을 살아왔으니까.

나의 시각은 내가 보고 느꼈던 세상이고

나의 생각은 내가 겪어왔던 세상이기에.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경솔한 행동이지 않을까.


내게 어른은 처음부터 어른이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의 부모님, 친척분들, 선생님, 아저씨, 아줌마. 그분들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으셨을 테고 나의 나이로 사셨던 세월을 지내셨겠지. 그러면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된다면 나는 어른인 걸까?

과연 서른이 되면 어른인 걸까. 아니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걸까.

어쩌면 어른이라는 건 상대적인 게 아닐까.

그래서 그냥 내가 세상을 조금씩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누군가를 좀 더 이해할 줄 알게 되고, 상황도 사정도 단정 짓지 않게 되는 것.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되는 것.


오래 숙성된 질문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적어 두었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을까. 아니면 그저 나이만 먹은 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일까.


동문회에서 보았던 선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그 모습 속에 나 자신의 그림자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되지만, 누군가는 어른이 되고 어떤 이는 그저 노인이 된다.

우리는 모두 교육을 받지만, 누군가는 지성인이 되고 어떤 이는 지식인으로 남는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가끔씩 이렇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의심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맛이라는 건, 세상의 모든 맛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각자의 레시피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그것이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조금은 어른의 맛에 가까워졌을까.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newyorkilbo.com/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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