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행복에 다다르는 두 가지 방법

현존하고 몰입한다면,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누리다가 떠날 수 있지 않을까

by 대장장이 휴

언젠가는 반납해야 할 삶이다.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 죽음이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내년이 될 수도 있고 당장 다음주가 될 수도 있다. 설령 내일이 우리가 죽게 될 날일지언정 우리는 그 사실을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죽음 앞에서 아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사실 죽음이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내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더 절절하게 느끼게 되고 그 때문에 더 행복하게 지금을 채우게 될지도 모른다. 죽음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인 현재를 좀 더 행복하게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두 개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지금 당장, 매 순간 행복하게 삶을 채워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온갖 불안한 마음과 두려움, 치미는 분노와 억울한 생각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감정들과 이로 인한 좌절감, 소외감, 우울한 마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우리에겐 괴로움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모든 관념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분명 결핍은 만족과 감사를 잉태하고 실패와 불행은 성공과 행복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괴롭고 힘든 감정과 생각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러한 괴로움과 불행 대신 행복과 기쁨으로 매 순간을 채우며 살 수 있을까.


많은 책들을 살펴보고 수많은 강연이나 문학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정리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면, 우선 행복이라는 관념에 대해 우리는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을 '최고선'이라고 정의한다. 최고선이란, 말 그대로 선 중에 최고의 선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선(善)을 추구하는데, 선이란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간략히 말하자면, 행복은 그 개념 자체로 다른 어떤 가치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가치라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추구하는 건강, 사랑, 부, 명예, 권력 등 모든 것들은 결국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추구된다. 즉, 인간이 추구하는 그 어떤 가치도 결국은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 즉 행복보다는 한 단계 낮은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 우리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가 꽤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조금 더 행복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사람도 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 밑에서 세포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밟으며 수제자로 손꼽히던 리카르 마티유는 돌연 모든 부와 명예의 가능성을 버리고 티벳 승려가 되어 현재 40년째 명상수행을 하며 삶을 보내고 있다. 그는 뇌파 측정을 통해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을 조사하는 한 연구에서 1등을 차지해 소위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그는 행복을 매우 건강한 상태일 때 일어나는 깊은 번영의 감각 혹은 느낌이라고 정의내렸다. 하지만 그의 정의 역시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언제 과연 행복을 느끼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에는 크게 더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행복은 제각기 다른 것에서 비롯되지만, 그럼에도 공통분모를 찾아 일반화한 수많은 이론들이 존재해왔다. 물론 아직까지 단 하나의 '정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행복에 관한 수많은 담론과 이론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는 관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바로 달라이라마, 틱낫한과 함께 21세기의 3대 영적 스승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Present in now'(이하 '현존'으로 서술)이라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긍정심리학의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Flow'(이하 '몰입'으로 서술)라는 개념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이론들의 논리구조나 과학적, 철학적 근거에 대해 자세히 상술할 생각은 없다. (관심이 간다면, 그들의 책을 찾아보길 권한다. 분명히 행복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이들의 관점을 내 행복에 대한 관점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한 가지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행복한 경험들을 가장 일관성 있고 보편적으로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할까. 언제 리카르 마티유가 묘사했던 저런 느낌, 행복감을 가졌을까. 나는 20대가 된 이후 혼자 카메라를 들고 주말 내내 어디론가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 배낭여행을 즐길 때 한없이 고요하면서도 깊은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맛있는 걸 먹거나 대화할 때도 그런 행복을 느끼곤 했다. 추운 겨울에 귤을 한 봉지 가득 사서 이불속에 앉아 만화책을 밤새 읽거나 드라마를 밤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때도 세상에 나와 그 만화책 세계만이 존재하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고,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깊은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거나 운동을 했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전혀 질서도 없고 맥락도 없는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을 가장 잘 설명해준 관점이 바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관점, 즉 '현존'과 '몰입'이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현존'은 내가 배낭여행을 할 때의 내 마음 상태와 비슷한 것 같고 '몰입'은 내가 드라마나 만화책에 푹 빠져서 밤을 꼬박 지새울 때의 내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이쯤에서 간략하게 현존과 몰입에 대해 어떤 개념인지를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선, '현존'이란 내 마음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내 의식이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명상과 흡사한 개념이기도 한 '현존'은 나와 세상에 대해 그 어떤 평가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열려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할 때 길가의 풀 한 포기나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바람소리까지도 청량감 있고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 장소가 처음 가보는 여행지여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마음이 그 어떤 의무감이나 평가잣대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에 대해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그렇게 저항이나 판단 없이 그대로 흘러가도록 수용하고 느끼는 상태가 바로 '현존'이다.


'몰입'은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일에 모든 의식에너지와 주의, 감정, 사고, 신체반응, 행동이 수렴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나와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세상에 그 대상과 나만 존재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가지는 일종의 무아지경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몰입상태에 대한 묘사는 암벽등반가, 음악가, 화가 등 어떤 창의적인 일을 업으로 삼거나 체스기사, 운동선수 등 극도의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문화나 개인의 특성과 무관하게 유사한 단어들로 묘사된다. 지고의 즐거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감정, 삶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행복감 등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몰입'이다. '몰입'에서는 의식의 완전한 질서를 이야기하는데, '현존'이 의식이 마음에서 자유로워진 상태로 한층 더 상위단계로 올라가 완전하게 깨어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고요함'의 느낌을 준다. 행복에 관한 이 두 가지 관점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수많은 순간들을 일관성 있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차 이야기해나가겠지만, 이러한 현존이나 몰입은 꽤나 녹록지 않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아니, 그냥 현존하고 몰입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를 방해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존하지 못하게 하고,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들은 너무나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해물이 두 가지 존재한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니 꿈속에서도 현존하지 못하고 몰입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하게 삶을 누리기가 어려워진다. 현존과 몰입을 방해하는 두 가지의 주요 원인은 다음에 ... 다른 포스팅에서.. 쿨럭..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허허)


P.S) 내가 행복을 느끼는 모든 순간들은 이 포스팅에서 이야기하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로 모두 설명이 가능했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행복에 관한 이 두 가지 이론이 사람들을 행복에 가깝게 데려다줄 수 있는 길 중 하나라 믿는다. 물론 이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꼭 이 관점에 동의해야만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설파하면서도 자신이 말한 것이라고 해서 무작정 믿지 말고, 스스로 직접 경험해보고 정말로 이게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면 그때 스스로 결정하여 믿든지 말든지 하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중심상담이론을 만든 칼 로저스는 자신의 이론과 관련하여 핵심개념 중 하나로 '유기체적 가치화 과정'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로저스는 인간이 어떤 외부의 도움이나 학습 없이도 태초부터 모든 경험을 스로의 능력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행복에 대한 어떤 관점을 믿고 따르든,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에 기초하여 다른 누구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끝.

keyword